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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미국은 지금 '불신 시대'

김 종 훈 / 야간제작팀장

1970년대 박경리 작가가 쓴 ‘불신 시대’란 단편소설이 있다. 한국전쟁이 시대 배경인 소설의 주인공 진영은 폭탄에 남편을 잃고, 무성의한 의사 때문에 아들까지 잃는다. 병원들은 주사약을 속이고, 가짜 의사 노릇을 하고, 가짜 약들을 판다. 집에 찾아온 여승은 시주로 받은 쌀을 팔려고 하고, 절이나 교회는 돈 없는 사람을 업신여기고, 신앙심이 깊은 척했던 이웃은 돈을 떼먹는다. 주인공 진영은 고단한 삶에 지쳤지만 결국 ‘불신 시대’에 맞서 항거하자는 다짐을 한다. 진영은 기만과 배신이 판치는 썩어빠진 세상에 절망하며 절에 뒀던 아들의 사진과 위패를 불사르면서도 ‘항거할 수 있는 자신의 생명’이 남아 있다고 외친다.

지금 미국은 전쟁통도 아닌데 불신 시대를 맞았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정부와 언론을 불신한다. 공영방송 NPR·PBS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 61%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고 했다. 행정부를 신뢰한다는 비율은 37%에 그쳤다. 의회에 대한 불신은 68%, 신뢰는 29%였다. 언론에 대한 불신도 68%, 신뢰는 30%였다. 국민의 절반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정부와 언론을 믿지 못한다.

폭스뉴스는 이를 보도하며 ‘국민들은 언론보다 백악관을 더 신뢰한다’고 제목을 붙였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 언론의 싸움 때문인지 절반이 넘는 불신 비율보다 37%와 30%의 신뢰도 차이를 부각시켰다. 폭스뉴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거의 유일하게 ‘가짜 뉴스’라고 욕하지 않는 언론이다. 그 이유는 이 보도를 통해서도 짐작이 간다.

또 여론조사 결과는 소속 정당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신뢰는 공화 84%, 민주 8%, 무소속 28%였다. 언론에 대한 신뢰는 공화 7%, 민주 56%, 무소속 28%. 의회에 대한 신뢰는 모두가 낮아 공화 39%, 민주 25%, 무소속 22%였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조사 결과는 트럼프 행정부와 연방상원 공화당 의원들이 추진하는 이른바 ‘트럼프케어’ 건강보험법안에 대한 지지도였다. 17%만 지지하고 무려 55%가 반대했다. 민주당원은 찬성 8%·반대 78%, 무소속은 찬성 13%·반대 68%, 심지어 공화당원도 찬성이 35%에 불과했고 반대 21%, 그리고 39%가 찬반을 가릴 만큼 충분히 알지 못한다고 답했고, 5%는 알고 있으나 판단을 내리지 못하겠다고 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 CNN방송이 샅바 싸움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서베이몽키의 여론조사는 깊은 불신의 골을 더 보여준다. 트럼프를 더 신뢰하는 비율은 43%(공화 89%·민주 9%·무소속 40%), CNN은 50%(공화 5%·민주 91%·무소속 55%)였다.

이렇게 조사 결과를 한참 떠들었는데 사실 국민들은 여론조사도 믿지 않는다. 여론조사에 대한 신뢰는 35%에 그쳤고 61%가 불신했다. 이 또한 민주(신뢰 51%·불신 47%), 공화(신뢰 28%·불신 70%), 무소속(신뢰 34%·불신 63%)에 따라 차이가 컸다.

결국 국민의 절반 이상이 이것저것 다 믿지 않는 ‘불신 시대’에 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가장 믿어야 할 행정부와 의회, 언론이 가장 큰 불신을 받고 있다. 또 정치 성향에 따라 세상을 보는 눈이 너무 달라져 한 나라에 살고는 있지만 마치 다른 나라 사람들 같다. 불신은 과거에 속았고, 지금도 속고 있다는 확신에서 온다. 국민의 절반 이상은 자신들의 오늘과 내일을 결정짓는 정치에 혐오를 느낀다.

국민이 정치와 언론을 신뢰하고, 정치 성향에 관계없이 옮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하는 그런 나라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그래서 꿈도 꾸지 말아야 할까? 최근 한 한국 가수의 말처럼 “가능한 것만 꿈꿀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불신의 시대’에 항거할 수 있는 생명들은 아직 많고, 앞으로도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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