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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지켜주고 싶은 자존심

오수연/편집국장석·문화담당 차장

문화면을 맡게 된지 딱 반년이 지났다. 지난해 12월 말 갑작스럽게 그리고 우연하게 문화 담당기자가 됐다. 자발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음악적, 문학적 소양이 남다르게 뛰어난 것도, 이에 대한 관심이 아주 많은 편도 아니었다. 문화면을 그다지 챙겨보는 편도 아니어서 오랜 신문사 생활에도 로컬 문인들이며 미술가며 음악가들을 잘 알지 못했다.

그런 문화면을 맡고 몇 개월이나 지났을까. 처음과는 마음가짐이 사뭇 달라졌다. 담당기자여서만은 아니다. 맡고 있는 다른 면에 비해 더 신경이 쓰이고 책임감이 크게 느껴졌다. 그냥 쓱쓱 기사만 후루룩 써 내리기에는 문화에 몸담고 있는 한인들의 노력과 열정이 확연히 피부로 와 닿아서다.

해변문학제와 재미시인협회는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바쁜 일상에도 많은 한인들이 꾸준히 글을 써온 것이다. 이민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시, 수필, 소설을 통해 표현하면서 '이민문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 가고 있다.

미주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역시 먼 타국에서도 한국의 전통문화 보전과 계승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전통문화의 올바른 정립'이라는 주제 아래 한국 예술인들을 초청해 수준 높은 전통 예술을 미국에 소개한 지가 올해로 벌써 35년째다.



미술분야에서도 한인들은 끊임없는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요즘은 거의 한 주도 거르지 않고 한인 작가가 포함된 전시회 소식이 들린다. 어쩔 땐 한 주에 갤러리 2~3곳에서 동시에 전시회가 열리기도 할 만큼 창작활동이 활발하다. 직장에 다니면서 비즈니스를 하면서도 작품 활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는 증거다.

특히 얼마 전 LA카운티미술관에서 초대전을 열고 있는 안영일(83) 화백을 만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평생 그림만 그려온 전업작가다. 그로부터 작품 사진들이 담긴 도록을 하나 받았다. 안 화백은 첫 장에 정성스레 사인을 해주었다. 하지만 펜을 꼭 쥔 그의 손과는 달리 사인은 유치원생이 쓴 것처럼 삐뚤삐뚤하기만 하다. 그는 2013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재활치료 중이다. 그 모습을 보며 작품활동이 가능할지에 대한 우려가 앞섰다. 사인을 하는 모습을 본다면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매일 캔버스 앞에 앉는다.

몇 글자 쓰는 것도 젓가락질도 어색한 그가 어떻게 붓을 잡는 것이 가능할지에 대한 의구심은 잠시뿐이다. 느리긴 하지만 그의 붓 터치는 흔들림이 없다. 오히려 진중하고 단호하다. 생각해보면 그가 펜을 들었던 시간보다 젓가락을 들었던 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붓을 들고 작업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면을 맡은 지 얼마 안 됐을 때 쓴 기사가 약간의 후회와 함께 문득 떠올랐다. LA로컬 한인 작가들의 작품 가격에 대한 기사였다. 작품 가격은 작가의 자존심과 같은 것이어서 작품이 팔리지 않아도 가격을 내리지는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여전히 객관적인 가격 책정이 되지 못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안타깝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깊은 고민 없이 썼던 기사가 아니었나 싶다. 그들이 들인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제대로 이해하고 쓴 기사가 아니어서다. 그래서 번복한다. 조금 덜 팔리면 어떤가. 그 가격이 그 열정 끝에 그 노력 끝에 세워진 자존심이라면 말이다. 할수 있다면 그 자존심 지켜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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