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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은순 컬럼-여행

여름도 기울어 가는 8월 중순 이곳 대학에서 일하는 친구와 여행을 계획하였다.
처음엔 동유럽을 갈까 생각하며 여기저기 여행사를 기웃거리기도 하였는데 비행기표 구하기도 만만치도 않으려니와 여전히 휴가철인지라 여행 경비도 상당했다.

처음에 유구한 역사의 흔적과 심오한 유럽의 정신이 배어있는 카프카의 고향, 프라하로 가자고 제안을 하자 친구 또한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라 했고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음악의 도시 비엔나 또한 여행지로 거론하며 즐거워했다.

기실 여행은 떠나기 전 지도를 펴놓고 부푼 마음으로 상상을 하는 시간이 더 아름답지 않던가. 두주 동안 행복한 고민을 하다가 결국 프랑스의 흔적을 담고 있는 퀘벡, 몬트리올을 여행지로 결정했다.
마침 캐나다 동부인 토론토,킹스톤, 오타와 등지를 경유하는 좋은 여행사 프로그램이 있기도 했다.



8월 하순 어느 날, 새벽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여전히 잠자고 있는 밴쿠버를 뒤로 하고 아무도 아는 이 없는 동쪽 토론토로 날라갔다.
여행지에서 맛보는 익명성의 자유는 얼마나 달콤하던가. 타성에 빠져 있어서 때로 지리멸렬하기까지 한 일상을 벗어나 낯선 곳을 향하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곳에는 새로운 풍경과 낯선 얼굴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않던가.
여행을 할 때 동반자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경치도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함께 음미하는 것이 훨씬 더 아름답다는 것은 누구든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으리라. 4년도 더 전에 이곳 밴쿠버에 와서 처음으로 알게 된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일찍이 유학을 간 이래 삶의 터전을 외국에 내린 터에 거의 국제파라고 할 수 있었고 여러 나라에서 산 경험 또한 가지고 있었다.
세계 각지에 많은 외국 친구들을 두고 있었고 미처 내가 가 닿지 못하는 많은 영역에 해박함을 과시하는 멋쟁이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녀의 겸손함과 순수함이란 내가 만난 어느 누구보다 독보적이었다.
시간 날 때면 함께 산보를 하곤 하는 그녀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 지고 동심이 되곤 하였다.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링컨의 말을 상기해 볼 때 영락없는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녀의 삶은 누구보다 청순한 그것이었음이 분명했다.
고백하건대 그녀를 친구로 두고 있어서 밴쿠버의 생활이 훨씬 든든하던 참이었다.

누군가를 잘 알고 싶으면 함께 여행을 가거나 등산을 가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여행지에서 사람은 훨씬 더 자신에게 근접한 모습을 드러내는 모양이다.

토론토의 CN타워에 올라서는 메트로 폴리탄 뉴욕의 거리를 떠올리기도 했고 전원 도시풍의 밴쿠버와는 다른 산업도시 토론토의 모습을 엿보기도 했다.
킹스턴에서 1천개의 섬을 돌아보는 천섬 유람선을 타고는 이태리 베니스에서 곤돌라를 타던 지난 시절을 상기하기도 했다.
고갈된 상상력이 여행지에서 비로서 힘을 발휘하는 모양이었다.

프랑스의 자취가 듬쁙 담긴 몬트리올에서 이틀 밤을 묵으며 우리는 낮에 본 노트르담 성당에 대해 그리고 영화 ‘노트르담의 꼽추’, ‘남과 여’, 더 나아가 보들레르의 ‘악의 꽃’에 대해 거론을 했다.
더불어 드높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고민하던 청춘기에 대해, 대학시절의 사랑과 우정, 학문에 대해 얘기하며 때론 한숨짓고 때론 환호작약했다.
세상에 대한 근심걱정 잊고 소녀처럼 깔깔대며 마냥 천진난만할 수 있었던 시간, 실로 그 얼마 만이던가.
젊디 젊은 나라인 캐나다에서 4백 년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고도, 퀘벡 시가지에서 만난 악사, 화가들은 언젠가 파리에서 부딪친 적이 있는 듯 눈에 익었다.
노천 카페에서 퀘벡산 맥주를 마시며 점점 사위어 가는 에스프리와 삶에 대한 정열을 곧추 세우자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아름다운 불어를 물리도록 들으며 퀘벡의 뒷골목을 누비면서 한 시절 나를 그토록 사로 잡았던 전혜린 선생을 떠올렸다.
방황하는 청춘이라 불리던 그 시절 ‘전혜린 신화’에 매료되어 얼마나 간절하고 뜨겁게 지성을 갈구 했던가. 그 시절 나의 가슴은 얼마나 뜨거운 인식욕, 고독한 이상으로 가득 찼던가. 여기저기 낯선 곳을 돌아보며 자연스레 추억이 떠올랐고 자신의 모습이 반추 되었다.

그리 보면 여행이란 떠남이 아니라 자신으로의 회귀, 거듭나기 위한, 영혼을 채우기 위한 거룩하고도 아름다운 여정이 아닌가 싶다.
토론토 피어슨 공항, 서점에서 책을 둘러보며 우리는 보다 많은 여행지에서 거듭 새롭게 만날 것을 다짐하며 귀로에 올랐다.


연은순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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