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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을 보면 내 인생 같아…” 몽고메리 한인 장혜복씨, 시와 건립 장소 논의
일제의 수탈 겪고… 이민 뒤 인종차별 견딘 세월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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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메리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7/07/11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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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열린 몽고메리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 제막식에서 장혜복씨가 기념비 옆에 섰다.
지난해 5월 열린 몽고메리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 제막식에서 장혜복씨가 기념비 옆에 섰다.
90세를 바라보는 앨라배마 한인이 몽고메리에 소녀상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다운타운 유서깊은 거리에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를 세웠던 89세 장혜복씨가 그 주인공. 장씨는 1971년 앨라배마에 인종분리 시대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있던 시절 미국에 왔다.

온갖 차별과 수모를 겪으면서도 안해본 일이 없을만큼 끊임없이 도전했고, 근면함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금도 몽고메리시 외곽에 위치한 뷰티서플라이 가게에서 주 7일 일하지 않으면 몸이 근질거린다고 말한다.

“나이를 먹었으니까 좋은 일 해야지.” 그는 일제의 수탈과 해방, 그리고 한국전쟁을 직접 경험했고, 미국 남부에서 인종차별을 견디며 한국의 발전을 먼 발치에서 지켜봤다.

이때문에 미국과 미군에 대해 한없는 고마움을 느낀다.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지난해에는 로자 파크스 여사가 백인 고객에게 자리 양보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양 손에 수갑이 채워진 유서깊은 거리에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를 세웠다.

또 개인 재산 25만달러를 출연해 한국전 참전용사의 후손들과 경찰, 소방관들의 자녀들을 위한 장학사업도 시작했다.

최근 애틀랜타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는 소식을 접했고, 몽고메리에도 소녀상을 세우기 위해 시측과 적절한 장소를 논의중이라고 그는 밝혔다. 그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은 역경이 마치 내 인생 같다”며 꼭 그들의 이야기를 미국인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장씨는 1928년경 이북 남포 지역에서 태어나 8살쯤 되었을 때 하루 아침에 고아가 됐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엄마 아빠가 사라졌다. 지금도 무슨 영문인지는 모른다”고 한다. 당시 일제가 남자들도 잡아들여 강제 노역에 동원했다는 소문으로 추정만 해볼 뿐이다.

땅에 떨어진 쌀알로 연명하고 볏집에서 잠을 청해야 했던 그는 목적지도 모른 채 기차에 몰래 올라 충남 어딘가에 내렸다고 한다.

당시 “수확된 농작물을 모두 일본으로 싣고 가기 위해 수많은 쌀가마니를 부두에 쌓아놓았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쌀 한톨도 아쉬워 배를 곯던 내게는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장씨는”소녀상하고 나하고 비슷한 경험이 있는거야. 쭉 읽어보면 나랑 비슷한 생활을 한거지”라고 거듭 되뇌었다. 그는 영문도 모른채 고아가 되면서 일제의 수탈에 분노해야 했고, 성인이 되어서도 인종차별을 이겨내며 굴곡진 삶을 살았다.

그에게 그에게 소녀상은 위안부 문제를 넘어 그 시대가 남긴 아픔을 위로 하는 뚜렷한 실체로 다가선다.

조현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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