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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국립공원 입장권 되파는 얌체들

[LA중앙일보] 발행 2017/07/14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17/07/13 22:27

가끔 등산을 즐긴다. 심장은 터질 듯 하고 땀은 비 오듯 쏟아지는 고난의 행군. 사서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그 묘한 성취감에 발길은 또 산을 향한다. 그때마다 이 험한 산길, 누가 다 길을 내고 다듬어 놓았을까, 고마운 마음과 더불어 궁금증이 일곤 한다. 그런데 이번에 그 궁금증이 풀렸다.

최근 찾아갔던 에스콘디도 인근 우드슨 트레일. 큰 바위, 아래 부분은 떨어져 나가고 얇은 감자칩 조각처럼 아슬아슬 붙어있는 너럭바위(Potato Chip Rock)가 유명한 곳이다. 해발 2881피트(878m). 등산로 입구 포웨이 호수에서 왕복 약 8마일.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올라갈수록 온통 바위 돌산이어서 결코 만만치 않은 산이다. 그 길을 두어 시간 올라 숨이 턱밑까지 찼을 무렵, 가파른 고갯마루에서 곡괭이와 삽으로 열심히 돌계단을 다듬고 있는 반백의 백인 아저씨를 만났다. 이 땡볕에, 이 깊은 산속에서, 어떤 사람이기에 저렇게 힘든 일을 하고 있을까, 길을 멈추고 말을 붙여보았다.

나이 64세. 이름은 테드. 반쯤 은퇴한 컴퓨터 프로그래머라고 했다. 산 아래 동네에 살면서 일주일에 서너 번씩 이렇게 혼자 올라와 길을 다듬는다고 했다. 물론 자원봉사다.

"재미있잖아요. 보람도 있고요. 우리 동네 산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신나는 일이죠."

과연! 미국이 자원봉사 천국이라더니 바로 이런 사람들 때문에 그런 수식어가 붙었구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그 동안 무심코 다녔던 수많은 산길, 물길, 공원길 등 미국 땅 구석구석이 이런 자원봉사자들의 숨은 손길이 있어 그렇게 편안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알다시피 미국에는 59개의 국립공원을 비롯해 87개 기념지역(National Monument), 78개의 역사유적지(National Historic Site) 등 모두 417개의 국가 지정 공원이 있다. 이를 관리 감독하는 기관이 국립공원국(NPS)이다. 여기엔 정규직 비정규직 포함해 2만2000여명의 직원이 근무한다. 하지만 늘 일손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그 많은 공원들이 무탈하게 굴러가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자발적인 기부와 자원봉사자들 덕분이라고 한다. NPS 웹사이트에 따르면 2016년에도 34만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땀을 흘렸다.

요즘은 한인 자원봉사자들도 많다. LA만 해도 수요자연산악회처럼 주기적으로 등산로를 보수하고 청소하는 동호회가 꽤 있다. 하지만 이런 봉사의 땀을 무색케 하는 한인들도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정말 몇 푼 안 되는 입장료조차 안 내려고 아등바등 애쓰는 사람들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미국 국립공원 연간이용권(Annual Pass)를 싸게 판다는 한글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곳저곳 여행을 마친 뒤 80달러에 산 이용권을 30~40달러에 되파는 것이다. 한국에서 온 여행객 중에도 귀국 후 이런 식으로 3만~5만원에 파는 경우도 보았다. 물론 이렇게 구입하는 것은 불법이다. 타인의 것을 빌려 사용하는 것 역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미국의 산과 공원은 수많은 기부자와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에 힘입어 모두가 함께 누리는 소중한 공간으로 보존, 유지되고 있다. 거기에 힘을 보태지는 못할망정 마땅히 내야할 입장료마저 회피하는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미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또한 미국을 방문하는 여행객으로서 그것은 최소한의 예의다.

봉사와 기부는 미국인을 미국인답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라는 것이 놀랍다. 자본 만능의 나라 미국이라면 그 국민들 역시 응당 돈 되는 일에만 나서는 이기적인 사람들일 것 같은데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내 돈, 내 시간 일부러 쓰면서까지 좋은 세상 만들기에 나서고 있는 미국인들을 비하면 우리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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