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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된 미국에서 추방당해 돌아온 사람 …“살아남기가 목표”
이태원서 일하는 한호규씨
미국에 입양됐다 시민권 없어 추방
한국서 '살아남기' 목표
"언어 장벽이 가장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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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스]    기사입력 2017/07/16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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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입양됐다가 추방돼 다시 한국에 돌아온 한호규씨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미국에 입양됐다가 추방돼 다시 한국에 돌아온 한호규씨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인천 공항에 도착한 뒤 무작정 여의도로 가서 2주일 정도 길에서 잤어요.
제가 유일하게 아는 한국 지명이 여의도였어요."


서울 이태원에서 만난 한호규(46ㆍ몬테 하인즈ㆍ사진)씨가 꺼낸 첫 말이다. 한씨는 1978년 미국에 입양됐다가 2009년에 추방당했다.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이태원의 한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한국말을 못하는 한씨가 그나마 일할 수 있는 곳이다. 잠은 월세 35만원 짜리 고시원에서 잔다.

한씨는 양부모의 학대 등으로 인해 몇 번 다른 가정으로 옮겨지다 1981년에 현재의 가족에 일원이 됐다. 한씨는 인터뷰 중 여러 차례 로스엔젤레스(LA)에 있는 부모와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한씨는 미국에서 공부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유는 “그들(미국인)하고 달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트럭 운전기사와 경비원 등 다양한 일을 했다. 90년대에는 미군에 입대해 3년 정도 복무도 했다. 2001년 어느날, 그는 마약 소지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짐을 옮겨 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받고 화물차를 몰았다. 친구가 부탁한 짐에 마약이 있었다. 나는 잘 몰랐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미국 시민권이 없다는 걸 언제 알았나
응답 :
“마약 소지 혐의로 경찰서에 간 뒤 처음 알았다. 양부모님들도 몰랐다고 한다. 입양 후 시민권을 받기 위한 절차를 진행했는데, 몇 가지 서류를 빠뜨려 제대로 처리가 안 된 걸 몰랐던 것이다. 추방되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결국 쫓겨났다.”

그는 법정에서 다퉜지만 패소했고, 3년 가량 복역했다. 처음 체포됐을 때만 해도 미국에서 추방당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시민권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된 후 양부모와 함께 구제받으려 백방으로 뛰었지만 소용없었다. 외국인보호소(dentention center)에서 머물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했다.

질의 : 한국에 온 뒤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이었는지
응답 :
“한국말을 못한다는 것이다. 언어의 장벽이 높았다. 음식점과 물류 창고 등에서 일했지만 보수가 적고 그마저도 한국말을 못해 어려운 점이 많았다. 영어를 가르치려 해봐도 관련 학위나 자격증이 없어서 안된다는 얘길 들었다.”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하는 한호규씨는 이태원에서 일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하는 한호규씨는 이태원에서 일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한씨의 목표는 ‘살아남기’라고 한다. 아침·점심 식사는 편의점에서 산 과자로 때우기 일쑤다.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서운함을 드러냈다. 정부에 도움을 요청해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답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탈북자들과 비슷한 처지 아닌가. 그런데 별다른 정착 지원은 없다.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학원도 알아봤지만 수강료가 비싸 엄두도 못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2012년 중앙입양원을 만들고 입양인들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한씨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인 2009년은 중앙입양원이 생기기 전이다. 입양원 관계자는 “입양원 설립 전에 한씨가 어떤 도움을 요청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가 우리 기관의 주거 시설에서 지낸 적이 있어 한국어 교육 지원 프로그램 등을 모른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나마 그에게 힘이 돼준 곳은 '해외입양인연대'다. 말벗이 되고 때로 소소하게 모여 삼겹살을 구우며 서로 위로한다.

한씨처럼 미국에 입양됐다 추방당한 한국인들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중앙입양원이 파악하고 있는 이는 6명이다. 그 중 한 명은 장난감 총을 들고 은행을 털려다 붙잡혔다. 또 다른 한 명은 방황하다 지난 5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민단체인 ‘입양아권리캠페인(ARC)’에 따르면 1950년대 이후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 입양아는 약 11만 명이다. 이 중 시민권이 없는 사람이 2만 명 가까이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입양 당시 양부모들이 이들의 시민권을 획득해야 하는데 일부는 몰라서, 일부는 번거롭거나 돈이 든다는 이유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들 모두가 추방당할 위기에 있진 않다. 그러나 마약 등 특정 범죄에 연루될 경우 모국으로 쫓겨날 수 있다.

미국은 2000년 입양아들에게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입양아시민권법(CCAㆍChild Citizenship Act)’을 시행했다. 하지만 한씨처럼 당시 이미 성인이 된 입양인들은 대상이 되지 않았다. 미국 의회에는 모든 입양인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계류 중이다. 이 법이 시행되면 한씨는 미국 시민권을 받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한호규씨는 한국말을 못하는 것이 가장 힘든 점이라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한호규씨는 한국말을 못하는 것이 가장 힘든 점이라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송우영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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