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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기획]한류 열풍의 중심으로 떠오른 공립학교-2

“아이들 가르치는 것이 너무나 좋다.”
이민 1.5세로 한인 교육자 사단 이끄는
몽고메리 교육청 김영미·제이 리 교장

“바로 눈앞의 성적보다 멀리 봐야 정답보다 답을 찾는 과정 중요”
“한인 학부모들 교육열 높지만 바쁘더라도 학교에 자주 가야”
 
K-팝 등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한류가 워싱턴-볼티모어 일원 공립 교육현장에서 열풍으로 번지고 있다. 교육 현장의 한류는 단순히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교육의 한 주체인 교사와 교육 행정직이라는 인적 파워로 성장했다. 한인 교사들의 숫자는 카운티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이미 일정 규모를 넘어섰다. 여기에 학교 행정을 책임지는 한인 교육자 시대도 불붙기 시작했다.
이들의 선두에는 몽고메리 카운티 교육청 김영미(후버 중학교)·제이 리(카더락 스프링스 초교) 교장이 있다.

1972년 초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도미한 김영미 교장. 교육자의 길은 한인 교회에서 시작했다. 교회 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교직을 생각했고, 1987년 실버스프링의 한 초등학교에서 마침내 공립학교 교사로 첫발을 내디뎠다. 이민자 학생이 중심인 이 학교 초년병 시절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하지만, 많은 것을 배운 시기였어요. 내가 아이들에게 100% 다할 때 아이들이 따라온다는 것, 내가 조금 힘들어도 사랑해주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이후 군인인 남편을 따라 한국으로, 미국에 와서는 FBI에 들어간 남편을 따라 하와이로 향했다. 유치원 교사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교사까지 섭렵했다. 2001년 석사 공부를 마치고 교감으로, 이후 웨이사이드 초교 교장(7년)과 후버 중학교 교장 4년 차를 맞고 있다.

이광자 교장 은퇴 이후 맏언니 역할을 맡은 김 교장은 최근 한인 교육자들의 급부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혼자서 하던 것을 이제는 여럿이 함께하니 너무 좋다. 더 많은 한인 교장·교감이 나오도록 모임을 만들고, 기회를 제공하고, 상담도 하고 있다. 매년 한인 교육자 파워가 커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한인 교장이기 때문에 한인 학생들에게 더 관심이 가냐는 질문에, 그는 주저 없이 “네”라고 대답한다. 학교 전체를 지휘하는 입장에서 안 그래야 하지만, 내가 찾는 것보다 그 아이들이 나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 예로 입양된 한인 학생이 학교에 와서 예의 바르게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교장 선생님”이라고 하면 “잘 있었어”하고 한국말로 대답해 준다고 했다.

김 교장은 “자연스럽게 한국말로 하다 보면 걔도 기분 좋고 나도 기분 좋다. 한국말 하는 것 일부러 눈치 안 본다. 교직원들에게 미안한 것도 없다”고 말했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이름에서도 묻어난다, 시민권 취득 시 이름을 고칠 계기가 있었지만, 여전히 한국 이름 ‘영미’를 고수한다고 덧붙였다.

맏언니의 역할은 학교 교직원 채용에서도 두드러진다. 비슷한 역량과 역할이라면 한인 교사와 한인 공무원을 먼저 채용한다. 백인들 위주의 지역이지만, 다양한 인종의 교직원을 채용, 문화적 다양성까지 넓히고 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가 지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자녀를 대하는 시각에 따라 다르다고 말했다. 즉 자녀 교육은 바로 눈앞의 성과로 평가하기보다는 먼 거리를 내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 아이들은 스트레스가 많으면 포기하고, 한두 번 실수하면 그대로 주저 않는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 주는 것이 중요하다. 정답을 아는 것보다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과 방법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인 교육자 전성시대를 여는 제이 리(카더락 스프링스 초교) 교장도 전형적인 이민 1.5세다. 워싱턴 일원 첫 한인 남성 교장이다. 13살 때 이민 온 그는 얼 우드 중학교 7학년으로 들어갔다.

이민 초기 겪는 언어의 불편함, 이민자로서 겪는 어려움을 모두 체험했다. 말이 들리지 않자 쉬운 영화를 반복해 보면서 영어를 터득했다고 한다.
이 교장은 “이민 초기 제일 힘든 점은 ‘다른 애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생각이었다”며“다들 옆에서 괜찮다 괜찮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스스로 공부를 썩 잘하지 못했다고 털털(?)하게 고백하는 이 교장은 교육자로서의 길은 아주 우연히 발견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때 영어도 잘 못 하고, 공부가 힘들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연히 사진에 빠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을 위한 여름 인턴 일자리로 들어간 학교에서 사진 과목을 가르치다 사진학 교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교육자로 첫발을 디딘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가르치는 게 좋았어요, 아이들이 이해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너무 좋았어요.”

메릴랜드대에서 사진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고등학교에서 교사로서 활동하다, 어느 날 교감 교장 등 행정직 권유를 받았다. 교직을 사랑하다 보니 처음에는 아이들이 보였지만,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후 교감 6년에 지난해 카더락 스프링스 초등학교 교장 대행을 하다 지난 6월 교장으로 승진했다. 이제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동료 교사들을 가르치고 학교를 이끄는 것이 더 재미있다고 귀띔했다.

올해 34살의 약관이지만, 교육관은 뚜렷하다. 교육의 주체인 학생과 교사들을 항상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교장은 “학생을 어떻게 제일 잘 가르치고 배울 수 있게 하는지, 교사에게는 어떻게 교장으로서 도움을 줄지 매일 매일 고민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성적이 향상되고, 교사들이 고마워할 때마다 자부심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이 교장도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인 학생들에게 관심과 신경이 더 쓰인다고 말했다. 이민자 학생으로 그동안 경험하지 않은 것 힘든 것 모두 안다며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다.

가르치는 것, 교육이 천직이라는 김영미 교장과 제이 리 교장. 이 두 교장은 한인 학생과 학부모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이 교장은 “이민 생활에 바쁘고 언어 불편함이 있어도 학교에 참여해 달라”며 “부모가 학교에 갈수록 한인의 목소리가 커진다. 한인의 목소리가 커지면 더 많은 서비스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장은 “예전보다 한인 학부모의 학교 참여가 늘고 있지만,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자녀들에 대해서는 아이들을 믿고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부모와의 데이트를 마련, 자녀와 부모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을 알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허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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