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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명석·윤시내 부부의 시베리아~몽골 횡단 기차여행

몽골…칭기스칸과 가라오케, 그리고 강남 스타일-①
세계 제국 세운 칭기스칸 도시 곳곳에 동상 세워 자랑

오후 2시30분 인천공항을 떠난 몽골 항공사 비행기는 3시간 후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 칭기즈칸 국제비행장에 도착한다. 바깥 기온이 어떤가 궁금하여 비행기 유리창 밖을 살피니 구름이 짙게 낀 날씨에 공항 직원들은 두툼한 겨울 조끼를 입고 털모자를 쓰고 일한다. 세계에서 가장 추운 수도(해발 1350미터, 최저 겨울 온도 섭씨 -45도)라는 명성에 걸맞은 첫인상이다.

그런데 하마터면 공항에서 되돌아갈 뻔했다. 출입국 관리소의 긴 줄에 서서 한참을 기다린 후에 차례가 되어 여권과 입국 서류를 제시하니, “울란바타의 주소가 어디요?”하고 직원이 묻는다. 상해에 있는 중국여행사를 통해 예약했고, 비행장에 여행사 직원이 마중 나와 있을 것이기 때문에 호텔은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 안내원 이름과 전화번호가 거기 입국서류에 있지요?” 하고 나는 조심스럽게 반문한다. “이 전화번호는 틀렸어요. 여덟 자리 숫자라야 하는데 여긴 일곱밖에 없잖아요?” 직원 목소리가 어찌 저리도 큰지, 뒤에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다 듣겠다. 외국 여행하는 사람이 호텔 이름도 모르고 왔다는 것을 다 광고한 셈이다. 부끄럽기도 하고 겁도 나서, 그거 외에 다른 전화번호는 없다고 딱 잡아뗀다. 직원은 내 얼굴과 흰 머리카락을 다시 한번 훑어보더니 더는 까탈을 부리지 않고 여권을 돌려준다.

종이쪽지에 우리 이름을 써서 들고 있는 여자를 보니 이제 살았다 싶어 어찌나 반가운지! 당신이 우리 안내원, Ms. Jagaa?‘냐고 물으니 자기 이름은 “보-기”라며 ‘Bogee’라고 스펠링을 알려준다. 한국어로 잘못 발음했다가는 큰일 날 이름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보-기는 울란바타 국제학교 영어 선생이고 운전기사는 남편이다. 그가 경영하는 몽골식 장화(앞이 뾰족하게 올라간 것) 공장이 근래 경기가 없지만 몽골 관광은 성장하는 추세라서 아내와 함께 관광 안내를 부업으로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림을 잘 그리는 열 살짜리 딸과 여섯 살짜리 아들을 둔 부부이다. 2박 3일 동안 입의 혀처럼 우리를 돌보아준 성실한 몽골인이다.
우리의 숙소는 시내 중심에 있는 프리미엄 팔라스 호텔. 11층 모서리 방은 넓고 깨끗하며 울란바타 시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녁은 16층에서 준다고 하여 올라가니 약 70~80명은 넉넉히 앉을듯한 식당에 제법 큰 무대가 있고, ‘시나트라 가라오케’라는 무지무지하게 큰 휘장이 쓸쓸하게 무대를 지키고 있을 뿐 손님은 우리 둘이 전부다. 첫 코스로 나온 국수장국은 맛은 좋은데 제법 간간해서 밥반찬을 해도 좋을 정도고, 두 번째 나온 것은 몽골 전통 튀긴 만두인데(야채 없이 고기로만 속을 해서 약간 질기다) 껍질이 두껍고 기름이 많다. 곁들이로 샐러드도 나왔다. 배탈 날까 봐 야채는 먹지 말라고 남편이 주의시키지만 야채 없이는 만두가 넘어가지 않아 눈치 봐가며 2개만 먹고 접시를 밀어놓는다.



다음 날 아침 식당 풍경은 어제와는 딴판이다. 이십여명 되는 손님이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뷔페로 제공되는 아침을 먹고 있는데, 식탁에는 그분들이 가져온 듯한 김치와 고추장과 김이 있다. 모두 한국 남자다. 일하러 왔다면 이런 호텔에 들지는 않을 테고, 관광이라면 어찌 남자들만 왔는지 의아해하니 남편이 낚시 동호회, 초등학교 동창회, 띠동갑 그런 그룹일 거라고 한다. 끓인 밥이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두 공기를 후딱 먹어치운다.

몽골은 티베트 불교가 주종을 이루고 몽골인의 80%가 불교 신자라 한다. 칭기스칸 비행장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 정면, 눈에 확 띄게 우뚝 서 있는 지붕 뾰족한 높은 건물이 간단(GANDAN KHIID) 사원이다. 간단 사원은 200여 년이 넘는 역사, 승려 600여 명의 규모, 26m가 넘는 금박 불상, 불상에 얽힌 얘기 등으로 몽골에서 가장 중요한 사원 중 하나이다. 마침 지금이(’white month’라고 함) 사자(死者)와 생자(生者) 모두를 위해 불경을 읽도록 보시하는 시기라 하여, 절 안은 참배하는 신자로 시장처럼 복잡하다. 불경마다 값이 정해진 표지판이 벽에 붙어 있고, 신자는 원하는 불경을 리스트에서 골라 신청하고 돈을 내면 스님이 독송해주는데, 산스크리트어나 티베트어로 암송되기 때문에 불경을 신청한 신자들은 알지 못한다고 한다. 승려는 결혼해도 좋고 독신으로 남고 싶으면 독신도 좋고, 음식도 고기를 먹던지 술, 담배를 하던지 다 자유다. 대부분 승려는 결혼해 집에서 살면서 절로 출근한다고. 그래서인지 간단 사원의 승려들에게서는 수행자의 청결함, 순수함, 경건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불경을 소리 내서 읊고 있으면서도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옆 승려와 잡담을 하고 정신은 딴 데 있다. 관세음보살은 그래도 들으시려나?

몽골 관광 일번지는 테레지 국립공원이다. 울란바타에서 약 한 시간 반가량, 금발의 상고머리를 연상시키는 노란 풀로 덮인 들판을 지나간다. 보통은 초원인데 올해는 가뭄이 심해서 풀도 나지 않는다고 한다.소떼들만 한가로이 풀을 찾아 어슬렁거릴 뿐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드문드문 장난감 같은 작은 집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유목민의 집, 흰색 캔버스로 지은 원형 건물(‘GER’ 혹은 ‘YURT’ 라 부름)이 점찍듯이 나타나면서 테레지 국립공원에 도착한다. 관광객들을 위한 게르(GER) 안에는 일인용 침대가 입구 양쪽에 하나씩, 자그마한 철제 난로가 중앙에, 등받이 없는 간이의자가 둘, 문에 걸린 플라스틱 옷걸이 둘이 전부다. 중앙에서는 허리를 펴고 서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간결하며 소박한 공간이라 유목민들의 집이라는 이색적인 느낌보다는 아, 이것도 역시 잠자는 방이로구나, 하는 친근감이 앞선다.

저녁 무렵, 조랑말보다 조금 큰 말을 타고 근방을 한 시간 반가량 돌아다녔다. 안내원이 고삐를 잡아 달리는 스릴은 손톱만치도 없지만, 그래도 몽골에서 말을 달린다는 쾌감을 상상하기에 충분하다. 다만 궁둥이에 살이 없는 남편은 안장 위에서 한 시간 반을 좌우 상하로 흔들려서 꽁지뼈 근처 피부가 벗겨지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자유가 공짜로 얻는 것이 아니듯이 모험도 공짜로 하는 것은 아니다.

울란바타로 돌아오는 길, 드넓은 벌판 저만치 문득 원형건물이 나타나고 그 건물 위에 말 탄 장군의 동상이 서 있다. 칭기스칸이다. 승강기를 타고 올라간 뒤 다시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칭기스칸이 타고 있는 말의 머리 부분으로 나온다. 끝이 보이지 않는 들판을 둘러보니 가슴이 확 트인다. 앞으로 이곳에 칭기스칸을 기리는 기념관을 크게 지을 것이라 한다. 칭기스칸을 나는 원나라의 시조로만 알고 있었는데, 칭기스칸과 그의 자손들이 세운 몽골제국은 만주에서 시작, 중국, 터키, 중앙아시아, 러시아, 월남, 한국까지를 포함했었으며, 로마 제국의 영토를 능가하는 광활한 영토에 평화와 관용과 자치를 허용했던 세계 제국임을 알게 되었다.

몽골 병사하면 용감하고 난폭하고 호전적인 군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칭기스칸은 정복한 나라의 국민에게 정치적 자치와 종교의 자유를 허용한 훌륭한 지도자였다고 한다. 몽골 사람들이 칭기스칸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충분히 이해된다. 칭기스칸의 동상은 국회의사당 앞에도 있고, 도시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울란바타 시내로 들어서서 2차 세계대전 때 소련과 몽골의 연합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기념비로 간다. 자동차는 힘들게 가파른 언덕을 올라간다. 기념비 주변은 손 볼 곳이 많고 쓰레기가 널려있어 눈에 거슬린다. 기념비를 유지하고 보수하는 일에는 손이 미치지 못하는 현실인 듯. 그러나 발아래 펼쳐지는 울란바타의 전경은 일품이고, 이 지역이 지금 상승세를 타는 곳으로 고급 아파트가 하늘 높이 올라가는 울란바타의 강남이라고 한다. “강남 스타일~” 하며 보-기는 말 춤 흉내를 낸다. 최고급 식당에서부터 구멍가게 카페에 이르기까지 가라오케 간판이 붙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얼마나 인기 있었을지 짐작된다. 칭기스칸의 나라에 울려 퍼지는 강남 스타일 가라오케. 세계는 지금 급속도로 좁아지고 있다.
▷문의: maxohin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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