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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오디세이] ‘킹파워 장비’ 김기형 대표 "혼자만 잘 살먼 뭔 재미여~"

이스트LA서 리커 운영하다…가드닝 장비 수리업체 인수
건축·조경 장비 판매·대여…남가주 최대 업체로 성장
OEM·홀세일 사업까지 확장…최근 자체 브랜드 런칭도
"이문 보다 사람 남기는 경영이 훨씬 보람 있어"
라이온스 클럽 회장 맡아…각막이식 수술 170건 지원


한 남자의 사업 이야기에 이토록 눈시울이 뜨거워질 줄이야. 대개의 아메리칸드림 성공기가 그러하듯 그 역시 맨손으로 눈부신 성공신화를 써왔지만 이 보다 더 마음을 잡아 끈 것은 그의 따뜻한 마음씀씀이었다. 옳다고 믿었으나 거친 세파에 시달리며 닳고 닳아 버린 인간에 대한 예의와 애정을 그에게서 발견한 순간 일말의 주저 없이 눈가가 뜨거워졌다. 바로 '킹파워 장비' 김기형(59) 대표다. 노련한 비즈니스맨이라기보다는 맘씨 좋은 충청도 선비가 훨씬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그를 보고 있노라면 왜 마흔 넘어선 자신의 얼굴에 책임지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58년 개띠의 무한도전

그는 그 유명한 58년 개띠다. 공주가 고향인 그는 대학 2학년 때 군 입대 했고 제대 하던 해인 1982년 LA에 왔다.



"제대 후 큰 형님께서 세상경험 제대로 해보라며 어학연수를 권유해 미국에 오게 됐죠. 유학생활 중 교회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하면서 2년 예정이었던 미국살이가 어느새 35년이 됐네요.(웃음)"

가장이 된 그는 1984년 이스트LA에 리커스토어를 인수해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당시 그 지역은 전 주인인 무서워서 못살겠다며 가게를 급매로 내놓을 만큼 험악한 곳이었다. 매일 밤 총성이 오갔고 실제로 그 역시 6년간 비즈니스를 하면서 이마에 총을 겨누는 강도와 수차례 맞닥뜨려야 했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없이 동네 사람들을 살뜰히 챙겼다. 그 지역은 히스패닉 가정이 주를 이뤘는데 동네 파티라도 있는 날이면 맥주 케이스를 들고 가 함께 어울렸고 동네 사람들조차 갱단이라 기피하는 청소년들을 아르바이트생으로 써 그들에게 듬직한 형이 돼줬다. 그렇게 그는 이웃들과 친구처럼 가족처럼 지냈다. 당연히 장사도 잘 됐다. 인수 당시 월 3만달러이던 매상은 얼마 안가 7만달러로 껑충 뛰었다. 그러다 1990년 패서디나에서 가드닝 장비 수리업체를 운영하던 친구가 개인사정으로 그에게 인수를 부탁해 사업체를 인수하게 됐다. 70년 전통을 자랑하는, 킹파워 전신인 '론 모워 코너'였다.

"저에겐 너무 생소한 분야였지만 잘 되고 있던 비즈니스여서 열심히만 하면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인수를 결정했죠."

#아메리칸 드림을 향하여

쉽지 않을 걸 예상하고 뛰어든 사업이었지만 현실은 훨씬 더 험난했다.

"장비 자체도 낯설고 기계 수리는 아예 모르는 분야니까 초창기엔 정말 힘들었어요. 게다가 영어도 잘 못하죠, 고객들 대부분이 백인들이었는데 인종차별도 많이 당했어요. 그래서 그때 결심했죠.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이 분야 최고가 되자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퇴근 후면 업소 문 걸어 잠그고 취급 장비들을 모두 분해에 다시 조립하는 일을 반복했다. 또 장비제조사들이 제품설명회를 개최하면 4~5시간 운전도 마다않고 달려가는 등 잠자는 시간도 아껴가며 장비 지식과 수리기술을 배우는데 열중했다. 그의 이런 열정과 성실함 덕분에 비즈니스는 날로 번창했다. 인수 당시 20만달러이던 연매출은 3년 만에 4배 가까이 뛰었다. 덕분에 오픈 10년 만에 이웃한 건물 3곳을 모두 매입해 사업을 확장했고 2000년대 들어선 버뱅크 2호점을 시작으로 웨스트코비나, 리시다 등 지점 4곳을 거느리게 됐다. 이처럼 비즈니스가 승승장구하자 2000년대 초반 그는 'US 가든 서플라이'를 설립하고 베트남 공장과 계약, OEM으로 가드닝 장비부품 생산을 시작하면서 도매업에 진출했다. 첫 주문은 잔디깎기 바퀴.

"가드닝 장비는 일본산이 꽉 잡고 있어요. 독과점이나 다름없다 보니 부품이 터무니없이 비싸고 회사들도 고자세였죠. 그래서 한국인의 자존심을 걸고 일본산보다 더 좋은 부품을 싼 가격에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 뛰어들었죠. 그런데 너무 잘 만든 게 문제였어요. 시간이 가도 바퀴가 닳질 않는 거예요. 바퀴가 마모돼야 또 사러 오는데 말이죠.(웃음) 그래서 1년도 안 돼 바퀴 판매는 접었죠."

현재 킹파워는 총 6만스퀘어피트 규모의 매장에서 가드닝·건축 장비 판매 및 대여와 수리를 비롯해 조경 서플라이, 장비부품, 비료, 인조 잔디, 농약 등을 판매하는 남가주에서 손꼽히는 원스톱 조경·가드닝 장비 전문업체로 자리매김했다. 또 홀세일 및 정부조달 사업도 성장세를 거듭해 킹파워의 연매출은 1000만 달러를 넘어선 지 오래다. 이처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그는 2002년 경희사이버대학교 자산관리학과 3학년으로 편입, 학부 졸업을 마치고 내년 2월엔 석사학위 취득을 눈앞에 두고 있다. 또 LA올림픽라이온스 클럽 회장으로도 활동하며 커뮤니티 봉사에도 열심이다.

"저희 클럽이 지난 15년간 미국 각막은행과 연계해 한국에 각막이식 수술 170여건을 지원해왔어요. 앞으로 가능하다면 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사람을 남기는 장사

그의 사업체 직원 수는 40여명 정도인데 이중 10년 이상 근속자가 절반이 넘고 20년 넘게 일한 이들도 적잖을 만큼 그는 직원들과 가족처럼 친구처럼 지낸다. 이중 리커스토어부터 시작해 30년을 동고동락해온 히스패닉 직원이 있었는데 그 직원이 사업을 해보고 싶다하자 그는 웨스트코비나에 건물을 매입해 그에게 마음껏 사업을 해보라며 렌트비만 받고 가게를 내줬단다. 그곳에서 6년간 비즈니스를 하며 자녀들 공부 다 시킨 그 직원은 더 이상 신세 질 수 없다며 독립해 지금은 자기 사업을 하고 있다고. 훈훈한 이야기일인지 몰라도 장사꾼 셈법으론 밑지는 것처럼 보인다 했더니 그가 웃는다.

"당시 그 친구 어린 자녀들 생각해서 얼마간이라도 안정적으로 사업할 수 있게 도와준 것뿐이에요. 그리고 그 직원이 사업을 잘해 고객을 남기면 저도 남는 장사 아니겠어요? (웃음)"

그러나 얼마 안가 이번엔 그의 아들 친구가 그 가게를 인수하고 싶다 해 꽤 잘나가는 그 사업체를 팔았단다. 그가 말한 '남긴 고객' 득볼 틈도 없이 말이다. 뭐 이런 장사꾼이 다 있나 싶었다.

"요즘 젊은이들 힘든 일 안하려 하는데 얼마나 기특하고 대견해요? 그리고 사업을 오래 해보면 투자대비 이문따지기보다는 결국 사람을 남기는 게 훨씬 의미 있다는 걸 알게 되요."

참 쉽지 않은 일을 참 담담하게도 말하는 재주를 지녔다 그는. 아마도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온 이만이 가능한 무심한 진심이리라. 그랬다. 그 마음 참으로 반짝반짝 거려 잠시 눈이 부셨다. 눈시울이 뜨끈해졌다.


이주현 객원기자 joohyunyi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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