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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사생활 노출증

지난 21일 18세 옵둘리아 산체스는 4살 아래 여동생을 태우고 중가주 로스바노스를 달리고 있었다. 음주 운전을 하던 옵둘리아는 이 장면을 인스타그램에 생중계하고 있었다. 차는 길을 벗어나 전복됐고 안전벨트를 하지 않은 동생은 차 밖으로 튕겨 나갔다. 머리를 다친 동생이 도와달라고 손짓하는 와중에서 옵둘리아는 생중계를 이어갔고 동생은 결국 사망했다. "내가…동생을 죽였다…네가 살지 못한다면, 정말…미안해." 영상에 남아있는 옵둘리아의 코멘트다.

이 사건에는 당연한 듯 '충격'이라는 반응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런 '충격'은 이미 어느 정도 일상화되었다. 옵둘리아도 영상에서 '(이 일로) 종신형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현상으로 판단하면 친동생의 죽음과 종신형을 살 수 있다는 두려움을 이길 만큼 SNS는 일상이 됐다.

물론 이런 사건을 편리하게 외면하는 방법이 있긴 하다. 언제든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면 된다. 하지만 일탈이 반복되면 일상이 된다. 한데 어느새 이런 일탈이 일상으로 부를만큼 잦아진 것 아닐까 걱정이 들기도 한다.

우리의 일상을 돌아봐도 그렇다. 우리는 오래전 세상을 거미줄처럼 연결한 스마트한 데스크톱에 거실을 내주었고 이젠 스마트폰에 침실을 내주었다.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다 지쳐 잠이 들고 눈을 뜨면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침대에서 내려와 밝은 아침을 맞는 일은 얼마나 잦은가. 그 빈도가 순간의 일탈일지 내 옆의 일상일지 좌우한다.



우리가 SNS에 기꺼이 침실을 내준 지금 핵심은 사생활이다. 사실 SNS의 주식은 사생활이다. 우리는 SNS에 자발적으로 사생활을 바쳤고 SNS는 사생활을 먹고 비대해졌다.

놀라운 것은 이것이다. 여전히 사생활을 개인의 삶에서 지켜야 할 마지막 보루라고 안간힘을 다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기꺼이 그 보루를 허무는 이들이 있고 그 수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엔 SNS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식탁의 음식과 식탁에 초대된 얼굴이었다. 이제는 욕실과 침실로 더 은밀해졌다.

내 삶에서 드러내서는 안 될 것이 있고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 알려고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있었다. 사생활은 그런 것이었고 그것을 깨는 것은 기껏해야 은밀한 그래서 추악하다고 여겨지는 욕망이었다. SNS 시대에 그 욕망은 어둠을 뚫고 고화질의 세계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사생활 노출과 훔쳐보기는 클릭 수만큼 즐거운 일이다. 생면부지의 남녀를 한 공간에 넣고 은밀한 생활을 중계하는 리얼리티쇼는 새삼스럽지도 않다. 이제는 연예인과 정치인까지 부엌과 침실을 공개한다. 우리는 이미 그 정도까지 사생활을 노출하고 훔쳐본다. 얼마 전만 해도 생각만으로도 무례했던 일이 소탈하고 정겨운 풍경으로 인기를 모으는 프로그램이 됐다. SNS로 무뎌진 사생활 감각의 영향이다. 모든 것이 거미줄처럼 연결된 세상에서 기꺼이 사생활을 포기한 이들은 SNS의 길 한가운데서 먹고 잔다.

드디어는 죽음과 범죄의 현장 같은, 결사코 숨겨야 할 영역까지 파고들었다. 11개월 된 딸을 죽이고 자신도 같은 방법으로 죽는 장면을 생중계한 충격은 언제까지 충격일까. 기록하는 순간 모든 것은 3인칭이 된다. 눈앞에서 죽어가는 이를 구하지 않고 중계하는 이유는 그 순간 나나 너의 일이 아니고 제삼자의 일이 되기 때문이다. 사생활도 기록하는 순간 1인칭에서 3인칭으로 바뀐다.

SNS도 무엇을 얻으면 다른 무엇을 잃는다는 금언을 비껴가지 못한다. 두려운 것은 어쩔 수 없이 무엇을 잃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무엇을 바치는 일이다. 이건 꼭 뉴스에서나 보는 남의 일만은 아니다.


안유회 논설위원 ahn.yoohoi@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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