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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맥 세상] "졸혼(卒婚), 해도 될까요?"

버지니아 샬러츠빌에 사는 에밀 스토셀과 리즈는 결혼 30년을 넘긴 부부다. 남편 에밀은 건축 설계사. 집안 곳곳엔 공구가 널브러져 있고, 필요한 장비는 눈에 보이는 곳에 꺼내 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다. 그러다보니 집안 전체가 거대한 공구 전시장을 방불케한다.

반면 아내 리즈는 시각적으로 예민한 사람이다. 물건은 항상 제자리에 있어야 하고 깔끔하게 정돈하기를 좋아한다. 두 사람은 이렇게 다른 생활 스타일로 결혼 후 20여년 이상 티격태격했다. 남편은 "왜 그렇게 깔끔을 떠나, 대충 살자"고 했고 아내는 "하루하루 숨이 막힐 지경"이라 했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함께 채식주의자로 음식도 잘 맞고, 사랑하는 마음이 식지 않았다.

아이들이 다 자란 다음 아내는 남편에게 제안한다. "우리 이혼은 하지 말고 따로 삽시다." 15분 거리에 따로 거처를 마련한 아내는 집안을 갤러리처럼 아름답게 꾸며놓고 웃음이 식을 날이 없다. 남편도 작업장에서 마음껏 연장을 놀리며 자유로운 삶을 꾸리고 있다. 이들은 주말에 깨끗한 아내의 집에서 만나 같이 밥도 먹고 달콤한 시간을 함께한다.

'MBC스페셜'이 최근 방영한 '졸혼(卒婚), 해도 될까요?'에 나오는 실제 사례다. '졸혼'이라는 단어가 많이 회자되고 있다.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가 2004년 출간한 '졸혼을 권함'이라는 책이 널리 알려지면서 유행어가 됐다. 이혼도 별거도 아니고 결혼상태는 유지하되 서로에게 의존하는 삶에서 벗어나 자립하는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적당한 거리에 떨어져 생활하며 한 달에 몇번 만나 부부의 정을 나누는 방식을 일컫는다.

처음엔 다소 장난스럽게 받아들여지던 '졸혼'이 새로운 결혼문화로 자리잡을 수도 있다는 조심스러운 분석도 나온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긍정적 인식이 높아 앞으로 더욱 보편화될 소지도 충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의 듀오휴먼라이프연구소가 미혼남녀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혼관 조사에서 10년 후에는 동거가 결혼보다 많아질 것이며 졸혼의 형태에 대해서도 40%가 긍정적이라고 반응했다. 앞으로 결혼의 모습은 지금과는 크게 달라질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노명우 교수(사회학)는 "앞으로 결혼생활에서 남편과 아내 개념보다는 파트너라는 개념이 더욱 강하게 부각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세태관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이미 영국에선 LAT(Living Apart Together:떨어져 함께 살기)라는 방식이 전체 결혼의 1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이미 신혼부부 이혼보다 50대 이후의 황혼이혼이 더 많아진 현실이 된 이상, 졸혼은 이혼이나 별거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의 의미도 있다는 의견도 많다. 실제로 각방을 쓰는 '쇼윈도 부부' '무늬만 부부'가 더 이상 희소하지 않은 현실에서 졸혼은 오히려 결혼생활을 유지시켜주는 희망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부정적 의견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부부관계가 원만치 못해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부부라면 진지하게 고민해볼 만한 주제가 아닐까 싶다. "함께 살 때는 맨날 원수 같더니 따로 살며 가끔 만나니 연애하는 것 같아 보기 좋다"는 자식들의 증언도 적지 않단다. 선택은 개인의 몫.

영성심리학자로 '아직도 가야할 길'의 저자 스캇 펙은 사랑을 이렇게 정의했다. "사랑이란 자기 자신이나 타인의 영적 성장을 도울 목적으로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이다."(Love is the will to extend one's self for the purpose of nurturing one's own or another's spiritual growth.) 사랑은 집착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원영 /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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