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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한국전 종전 기념일과 '리멤버 727'

오래전 DMZ(비무장지대) 근무시절 얘기다. 입대한 지 1년이 지나서 그것도 어렵사리 이등사수 조건을 충족시키고 나서야 첫 휴가를 나올 수 있었다. 서울행 시외버스에 올라타고는 요금을 냈다. 하지만 여차장이 한사코 안 받겠다며 손사래를 쳐 본의 아니게 무임탑승을 할 수밖에.

툴툴거리는 버스에서 몇 시간 졸다 깨다를 반복한 끝에 드디어 서울역이 한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흥분했던지 심장이 마구 쿵쿵댔다. 버스 트랩을 밟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자 차장은 내 군복바지 주머니에 얼른 돈을 찔러줬다. "맛있는 거 사 드세요." 그러고는 맑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사실 승객 돈을 받아 내게 주었으니 공금횡령이나 다름없겠다. 그때 버스차장 월급이라 해봤자 최저임금은커녕 생존임금에도 못미쳤을 터. '삥땅은 죄가 아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을 때여서 시시비비를 가릴 계제가 아니었다. 삥땅을 쳐서 내게 주었을망정 차장의 마음 씀씀이가 얼마나 고마웠던지. 하기야 나라 지키느라 고생했는데 돈 몇 푼 훔쳐 준 것이 뭐 그리 대수일까마는.

문득 그 차장이 생각난 건 얼마 전 어느 미군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읽고 나서다. 이름과 계급 소속은 밝히지 않았다. 두 아이의 아빠인 그는 민간인 복장을 하면 여느 40대 가장이나 다름없는 평범한 소시민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런데 군복을 입은 채 부대를 나서면 그 순간 '영웅'으로 신분이 바뀐다고 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 참 민망하다는 것. 심지어 "이 분 때문에 우리가 편히 지낼 수 있다"며 "땡큐하라"고 아이들을 다그치는 부모들도 적지 않다고 털어놨다. 얼마나 당황했든지.

아줌마들은 또 어떻고. 아내가 보고 있는데도 갑자기 허그를 하겠다고 뒤에서 껴안아 곤혹스럽기조차 했다. 할리우드 스타도 아닌데.

그가 경험한 '최악의 사례'는 수퍼마켓에서다. 크레딧 카드를 긁으려 하자 캐시어 왈 누군가가 먼저 계산을 했다는 것이다. 그 뿐인가. 어느 날은 왠 생면부지의 남성이 100달러짜리 기프트 카드를 건넸다. 그로서리 보는데 보태 쓰라며. 창피스럽기도 하고 자존심이 상해 얼굴이 붉어졌다. 홈리스도 아닌데.

처음엔 시민들의 군 제복에 대한 존경심으로 여겨 고마웠는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이젠 '싫증 나고 지친다'고 썼다. 그 군인은 이들을 일컬어 '크레이지 엉클(crazy uncle)'이라고 불렀다. 직역하면 '미친 아저씨'가 되겠으나 요즘 우리말로는 '꼴통 아재'가 가깝겠다. 미국서는 진보 보수의 이념이나 당적에 관계없이 애국심이 충만한 사람들이다.

그는 이렇게 글을 맺었다. "내게 너무 고마워하지 마세요. 제발요."

그런데 '크레이지 엉클'이 하나둘이 아니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이 나라엔 '똘끼' 있는 아재들이 수도 없이 많다. 뒤집어 생각하면 이들의 '미친 존재감'이 미국 아니 미군을 세계 최강으로 만들지 않았나 싶다.

엊그제 본보에 소개된 김한나씨는 '크레이지 아줌마'라 불릴 만하다. 김씨는 한국전에 참전한 바 있는 찰스 랭글 전 연방하원의원의 수석보좌관 출신. 자기 돈을 들여 6.25 참전국을 모두 방문 참혹한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노병들을 찾아 고마움을 전했다. 김씨의 메시지는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인해 상처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싶다는 것뿐. 김씨는 오늘 한국전 휴전기념일을 맞아 수도 워싱턴에서 '리멤버 727' 행사를 펼친다.

이름 모를 군인과 김씨 사연을 읽고 나서 느낀 게 하나 있다. 미치지 않고서는 나라를 건사할 수 없다는 그런 소회다.


박용필 /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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