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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새미 리 박사를 추모하다

김시면/전 LA한인회장

매일 나가는 수영장이지만 오늘은 토요일이라 탈의장에 사람이 제법 붐볐다. "Sammy the man! Do you know Sammy Lee" 하고 조가 나에게 인사했다. 나는 이곳에서 Sam이라 불린다. 처음엔 "See"라고 불렸는데 어느 땐가 Sam이 되었다.

새미 리는 스쿠버 다이빙 선수로 미국 올림픽 국가 대표로 1950년대에 2번씩 금메달을 땄다. 엄격히 국가 영웅이다. 그런데 2년 전 93세로 세상을 떴다. 헌팅턴비치 자기 집 근처 장지에 가족장으로 안치되었다. 장엄한 올림픽 송이 예포 되었다.

한인 2세로 10세에 잠시 백인 가정에 입양되었다가 다이빙 선수로 각광을 받기 시작하여 조그마한 체구로 자신의 의지를 잘 소화시켰다. 긴 여름 수영장에 홀로 남아 석양을 만끽하던 어린 스쿠버 다이버 새미 리는 분명 어린 한국 소년이었다. 자서전에서 친구 없는 외로운 소년 시절을 보내고 까마득히 높은 다이빙대에 선 조그마한 동양인의 자신을 그리며 울었다 했다.

그 이후 또 의사 공부에 매진하면서 잠시 교편생활도 했다. 그 후 의과에 진학하여 유명한 의사가 되었다. 1984년 LA 올림픽 개회일 필자가 피코 길을 돌아 크렌셔를 뛰고 올림픽 거리로 와서 들고 온 성화를 새미 리의 터치에 불을 댕겼다. 오늘날까지 그 봉송 장면과 순간을 기록한 사진을 걸어 두었고 봉화등은 대학에 다니는 손자에게 유물로 이미 주었다.



그 후 1999년 필자가 헌팅턴비치 데이번 포트 섬에 살 때 자주 캐스 피시 코브(Cath Fish Cove)에 사는 새미 리 박사 집을 찾았다. 웃는지 우는지 모를 정도로 반기는 박사의 모습과 말은 더듬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자기보다 키 큰 백인 아내를 소개했다. 이제 내 나이도 80을 넘기고 전도서에서 수고와 슬픔뿐인 인생의 외로운 나그네의 길을 정리하려 한다.

새미 리 박사의 나그네 길과 만날 날이 언젠가 다시 있을지 물끄러미 먼 하늘을 보며 추모한다. 우리 두 사람이 새미 리 박사의 이야기로 열을 올리고 있을 때 나이 제법 많은 90세의 지미가 왔다. "나는 20년 전에 새미 리와 골프를 쳤는 걸!" 하면서 우리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떻게?" 내가 물으니 우연히 헌팅턴 비치 네이비 코스에 갔더니 티오프 하려다가 함께 치게 되었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얼마나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는지 나는 덩달아 함께 치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들을 무시하고 사는 습성이 없는지 부끄러워해야 했다.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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