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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리오그란데와 한강

해체된 지 벌써 40년이 돼가는 데도 여전히 소비되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팝 그룹. 스웨덴의 4인조 혼성그룹 '아바(ABBA)'를 두고 하는 얘기다. 21세기에 들어섰지만 낡았다는 느낌이 전혀 안들어서일 터다.

데뷔곡은 1974년 유러비전 송 콘테스트의 '워털루'. 나폴레옹이 영국을 비롯한 연합군과 결전을 벌여 패배한 곳이다.

아바는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남녀의 사랑에 빗대 노래했다. 촘촘하고 섬세한 멜로디에 감성을 듬뿍 입혀서. 그로부터 2년 후 아바의 명성은 최절정에 오른다. '퍼낸도(Fernando)'가 공전의 대히트를 친 것. 1000만장이 넘게 팔렸으니 까탈스런 평론가들이 비틀스와 엘비스 프레슬리에 견줄 만도 했겠다.

'퍼낸도(페르난도)'의 주제는 전쟁. 이 점에서도 '워털루'와 겹친다. 전쟁특수를 누렸다고 해야할지. "페르난도, 저 북소리가 들리는가"로 시작되는 노래는 전쟁의 무서움을 얘기한다.



"우린 아직 젊어 죽을 준비가 안돼 있다"며 '리오그란데' 강을 건넜던 그날 밤을 떠올린다. 리오그란데는 큰 강이라는 뜻이어서 '한강'이라 불러도 괜찮을 성 싶다.

노래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자유'다. 비록 지금 늙고 병들었지만 똑같은 상황에 처해지면 다시 총을 들고 싸우겠다는 결기가 담겨있다. 자유는 목숨과 맞바꿀만큼 지켜야할 소중한 가치이니까.

'퍼낸도'의 배경은 1910년의 멕시코 혁명이다. 당시 대통령은 포르피리오 디아즈. 쿠데타로 권력을 잡아 무려 35년이나 장기집권한 독재자다. 그가 7선에 나서자 마침내 멕시코 전역에서 저항의 횃불이 솟아 올랐다.

혁명의 불을 당긴 지도자는 프란시스코 마데로. 표현의 자유와 농지개혁, 노동조건 개선과 외국자본 특혜 폐지 등을 외치는 한편 독재권력을 풍자한 '대통령 왕위계승론'을 펴내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로도 떠올랐던 인물이다.

마데로는 원래 멕시코의 10대 부호에 꼽히는 가문 출신이다. UC버클리에서 수학한 탓인지 정치적 성향이 진보에 가깝다. 당초 평화적 정권교체를 내걸고 집권층과 협상을 벌였으나 되레 반역혐의로 체포돼 옥에 갇힌다. 경비원들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하자 텍사스로 망명해 세를 모은 뒤 혁명군을 이끌고 국경을 넘는다. 아바의 노래에 등장하는 페르난도 역시 혁명군의 일원으로 리오 그란데 강을 건넜다.

혁명은 어찌 됐을까. 마데로는 결국 '횃불 대통령'의 꿈을 이룬다. 하지만 얼마안가 군부가 그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때 나이 불과 39세. 개혁의 열매가 채 영글기도 전에 민주의 제단에 피를 뿌린 것이다. 이후 극단적인 빈부격차는 고착화 됐고 부패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지난 주 텍사스주 샌앤토니오에서 벌어진 '죽음의 여정'을 보며 멕시코 혁명은 아직도 미완성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90명 이상이 빼곡히 들어차 숨 쉬기 조차 버거웠지만 대부분이 트레일러가 '아메리칸 드림'으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으로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출발한지 얼마 안돼 차 안은 오븐처럼 달아올라 10명이 목숨을 잃었다. 얼마나 끔찍했을지 상상마저 안 된다.

마데로의 혁명이 성공했더라면 이 같은 참사는 없었을 텐데. 지금쯤 자원부국, 경제대국이 돼 국민들이 비자 없이 리오그란데 강을 맘 놓고 건널 수 있었을 텐데.

그 뿐인가. 트럼프가 국경에 장벽을 쌓을 일도 없을 테고. "그날 밤 하늘엔 별들이 밝게 빛났지. 페르난도, 자네와 나, 그리고 자유를 위해서 말이야." 100년 전 흘린 피가 헛된 것 같아 노래가 더욱 애절하게 들린다.


박용필 /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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