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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희망의 사다리

김정국 골롬바노 신부 / 성 크리스토퍼 성당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은 아마도 고통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절망이 아닐까. 크고 작은 고통스러운 일이 우리 주변에 많지만 가장 힘든 고통은 희망을 잃어버린 채 겪게 되는 고통일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으면서 유럽의 많은 지성들이 무신론을 부르짖고 고통에 절규했던 것은 역설적으로 희망을 잃은 상태 자체가 이미 신의 부재를 뜻하는 지옥과 같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탈리아 시인 단테는 '신곡'에서 지옥 입구에 '모든 희망을 버린 이들이 들어가는 곳'이라는 팻말을 써넣었다. 물론 세상에도 우리를 지치고 절망하게 하는 많은 일이 있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이라잖아"하며 실낱 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살 길을 찾는다면 절대 끝은 아니다.

희망은 생명을 향한 마지막 끈이고 특히 신앙인에게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붙들고 세상일을 바닥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아닐까? 그만큼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안이하게 사는 일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신학적 덕이라 부르는 믿음, 희망, 사랑은 모두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믿음을 가졌다는 것은 하느님과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 희망을 가졌다는 것을, 하느님께 희망을 둔다는 것은 그분을 사랑하려는 출발점이요,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채워드리고 싶은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 그 셋의 연결고리는 죽어서야 끊어진다.

교회의 가르침은 이 세 가지 덕 중에 사랑은 우리가 하느님 곁에 가서도 여전히 우리 마음에 남아 있지만, 믿음과 희망은 이 세상에서만 필요할 뿐 하느님께 가서는 더 필요치 않다고 한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것이니 하느님을 볼 수 있게 되면 소용이 없다. 그리고 희망은 미래에 더 나은 것이 이루어지리라 기대하는 것이라면 하느님 앞에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어디 있겠는가? 하느님을 직접 뵙고 약속하신 행복을 누리게 되는 때에는 믿음과 희망은 더 이상 필요 없고 오직 사랑만 끝까지 남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영성가들은 이 둘을 '하느님께 올라가는 사다리'라고 불렀다.



엊그제 주일 지낸 '주님 변모 축일'(6일)은 예수님이 영광스럽게 변한 모습을 제자들이 목격했던 사건을 기념한 날이다. 이는 주님의 십자가 처형이라는 절망을 겪게 될 제자들에게 주신 희망의 메시지였다. 최고의 절망에서도 부활을 기다릴 여지를 마련해 주신 것이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잃는 일은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었다. 이를 앞두고 예수님은 절망할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울 마지막 한줄기 희망을 보여주신다.

사도 바오로가 로마서에서(5,3-4) "우리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합니다. 고통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낳고, 그러한 끈기는 희망을 낳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고 외칠 수 있었던 것도 희망과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신앙인은 고통과 좌절 속에서도 항상 평화와 희망을 잃지 않는 오뚝이가 되는가 보다. 어떤 이유이든 절망 속에 처한 모든 이들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희망으로 위로를 얻고 믿음 안에 다시 일어나기를 빈다.

bano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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