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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배우는 마르띤의 스패니시 생활회화 <32>세계최초의대함대

13~14세기까지 미개했던 서양 문명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계기는 대양 개척의 결과로 동양과의 해상무역 통로를 열었고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다. 그 과정에서 유럽 각국 간에 치열한 경쟁이 있었고 경쟁의 결과로 선박의 비약적인 발전과 총포의 발달이 이뤄졌다.

이러한 과학적인 비약 말고도 마침 르네상스(그리스 고대 문명의 발견) 시기와 맞물려서 존재의 본질인 의식의 참가치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당시 동양은-동양이라면 그냥 중국이다-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었으나 정치 체제가 황제 체제로 황제는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했고 또 불행히도 중국은 동양 전체에서 경쟁할 상대가 없었다.나라는 황제의 능력에 따라 흥망했다. 대표적인 예가 15세기 초 명나라 영락제 치세 시 정화의 대함대 원정 항해다.

1405년 영락제는 환관 정화를 사신으로 임명하여 함대를 거느리고 서양을 원정케 했다. 당시 서양은 지금의 서양이 아니고 중국 남해 이서의 바다와 연해 각지를 지칭하는 용어였다. 정화는 비록 환관이었으나 회족이었고 키가 8척이었으며 무용에도 뛰어난 장군이었다.

정화의 원정대는 62척의 대선과 전투함 수송선 등 총 수백척의 선박에 병사 이외에도 수부 기술자 의사 등 무려 2만8000명으로 구성되었다. '명사'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정화의 선단의 기함은 길이가 150m 넓이가 62m로 현대 전문가의 계산의 의하면 8000 톤의 배수량을 가진 배였으니 얼마나 큰 배인지 짐작이 간다. 정화 선단의 기함 크기는 '명사'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으나 후대에서는 과장이라 하여 이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1957년 남경 조선소에서 당시 배의 거대한 키가 발견됨으로써 기록에 거짓이 없음이 증명됐다. 이런 배를 서양에서 만든 때는 19세기다. 중국의 선박 제조 기술은 무려 500년 정도나 앞서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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