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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맥 세상] '얼' 빠진 나라의 광복절 풍경

뉴스를 읽다가 보다가 가끔 눈시울이 젖을 때가 있다. 억울한 사연을 접할 때다. 이들의 원한과 좌절이 누군가에 의해 이해되고 풀어졌을 때 그 해원의 기쁨이야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너무 너무 고맙지요. 이젠 죽기 전에 조그만 기여라도 하고 죽어야죠. 그동안 사는 게 아니었지요." 독립군 양성과 항일무장투장에 앞장섰던 독립운동가 김성생 선생의 손자 김동만(77)씨 부부. 서울 서대문구가 생활이 어려운 독립·민주운동가 후손들을 위해 지어준 '나라사랑채'라는 아담한 새 집에 지난 14일 입주하면서 내놓은 소감이다. 중국에서 살던 김씨 부부는 27년 전 한국땅을 밟았으나 막노동을 전전해야 했다. 월세 35만원짜리 단칸방에서 궁핍한 생활을 하던 터였으니 뒤늦은 나라의 '보은'이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경남 고성에서 3·1만세운동을 주도했던 독립운동가 허재기 선생의 손녀 허성유(66)씨도 함께 입주한 15가구 중 한 명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사하죠. 이때까지 고생한 것이 서글프고 원망스러웠는데 그런 감정이 없어졌어요." 가사도우미를 하며 살 곳이 없어 관악구와 영등포구를 떠돌며 살았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울음을 토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현충일 추념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겪고 있는 가난의 서러움, 교육받지 못한 억울함, 그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현실을 그대로 두고 나라다운 나라라고 할 수 없습니다. 독립운동가 한 분이라도 더, 그 분의 자손들 한 분이라도 더, 독립운동의 한 장면이라도 더, 찾아내겠습니다." 백번 지당한 말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뒤집힌 현실은 여전하다"고 말한 것처럼 가난한 독립운동가 후손, 떵떵거리는 친일파 후손들의 모습은 더욱 공고화되고 있다.



지난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한 언론이 독립운동가 후손들 모임인 '광복회' 회원 1115명 전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이들의 월소득을 봤더니 200만원 미만 구간에 전체 75.2%가 몰려 있었다. 개인 총 재산도 국민 평균보다 훨씬 적었다. 월소득 200만원 미만 구간에 독립유공자 본인(38.4%)보다 자녀(72.2%)와 손자녀(79.2%), 증손자녀(62.2%) 비율이 더 높아 독립유공자의 '가난 대물림'을 여실히 보여줬다.

친일 청산이 되지 않은 나라였으니 독립유공자에 대한 '보훈'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던 것이다. 보훈의 역사적 과정을 살펴보면 기가 막힌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인물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이시영 부통령 딱 2명이었다. '대한민국'의 출발이 어떤 정신으로 시작되었는지 알 만한 대목이다.

5·16 군사정권은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독립유공자 선정작업에 나섰다. 공적심사위원회에는 대표적인 식민·친일 사학자 이병도와 신석호가 참여했다. 이들은 늙거나 사망한 1980년대 초반까지 번갈아 심사위원회에 참여했다.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보훈'이 광복 70년이 넘도록 제대로 되지 않은 역사적 '적폐'의 뿌리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독립운동가 가문도, 친일부역자 가문 출신도 아니다. 그러나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가난의 대물림을 받아 아직도 국민 평균 이하의 삶을 이어간다는 현실을 납득할 수는 없다. 친일청산까지는 아니더라도 독립운동가인 '못난' 아버지를, 할아버지를 둔 죗값을 치러야 하는 나라를 '나라다운 나라'로 부를 수 있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은 생각은 아직 없다. 그러나 "독립운동가의 3대까지 합당한 예우를 받도록 하겠다"는 그의 말에서 그나마 '얼'빠진 나라를 구하려는 최소한의 의지가 읽혀 박수를 보낸다.


이원영 /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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