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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최소한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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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7/08/18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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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미군으로 근무하던 동생네가 휴가차 한국에서 와서 아이들을 데리고 근교로 캠핑을 다녀왔다. 신록이 우거진 풍광도 좋고 오랜만에 떨어져 있던 조카들도 보니 할 얘기도 많아, 모처럼 살가운 3박4일을 보냈다. 그런데 그다음이 씁쓸했다.

분명 산속으로 캠핑을 왔기에 더 산 물건은 없었을 터, 오히려 가져온 짐을 사용했으니 떠날 때는 당연히 줄어야 하는데 차에 싣고 보니 출발할 때와는 달리 의자 하나를 더 차지했다. 아이 하나를 숲속에 떼어놓고 와야 할 지경이어서, 짐을 풀고 피난민처럼 줄지어 짐을 정리하는데 참으로 가관이었다. 십대 계집애들이 셋씩이나 되니 헤어드라이어가 나뒹굴고, 아침에 쓰고 남은 날달걀이 노란 플라스틱 통에서 깨져 침낭을 적시고, 기름 묻은 프라이팬과 물주전자가 백팩 속에 섞여 있었다. 그 와중에도 웃고 떠드는 아이들에게 텐트를 다시 접으라며 악다구니를 쓰는 올케의 모습…. 그다음은 차마 옮기기에도 무색할 정도의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모처럼의 가족 나들이가 길고 어색한 침묵 속의 귀갓길이 되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것이다.

돌아오니 우리가 정말 그만한 짐들이 필요했던 지에 관해 생각해보게 됐다. 동네를 빠져나오다 보면 쉬 마주치는 거라지 세일과 코스코에서 샴푸와 칫솔 치약을 사도 몇 년치분의 공급을 강요하는 무지막지한 판매전략을, 그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 때 맞춰 입고 신고 걸치고 꾸미고 바르는 것들에 대한 깊은 의구심이 일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삶의 최소한 것만을 갖고 살아가는 미니멀리스트였다는 사실은 세간에 잘 알려진 사실이다. 청바지와 같은 색의 자라목 티로 나와 제품 설명회를 하던 모습은 아직도 우리 기억에 있다. 절간의 장지문 사이로 스며든 투명한 햇살만 가득한 산방의 노란 방바닥과 그와 어울린 최소한을 놓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깊은 여백을 상상해 본다. 법정 스님의 최소치만 갖추어진 키 작은 의자도 거기에 있다면 썩 좋은 그림이 될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차곡차곡 앗아내고 비우고 빼 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충일한 마음은 그다지 절실하지 않은 물건까지도 기어코 내 손아귀에 움켜 넣은 후에야 생기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진 것을 곡진히 사용하는 족한 마음의 상태에서 우러나오는 것은 아닐까 한다.

최근 일본에서도 단사리(斷捨離)라고 해서 절실하지 않은 것들을 끊고 버리고 멀리하는 최소한의 삶에서 오는 충일감 느끼기가 젊은 층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풍요 속에서 자라고 컸지만 정작 그들이 사회에 나갈 때는 변변한 직장조차 얻을 수 없었던 그들의 좌절, 마음의 족함을 얻기 위해서는 살벌한 먹이 사슬의 피라미드 위에서 더 많은 것을 끊임없이 벌어와야 하는 이른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구조 속에서 단출한 삶과 명상을 통해 기대치를 한없이 끌어내림으로써 족함을 높이는 것이었으리라.

중요한 일에 집중하려면 그렇지 않은 일을 줄여야 한다. 우리는 탯줄을 자르고 갓 캐어낸 붉은 고구마처럼 홑몸이 되어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 그 떠남은 지극히 개별적이라 누구도 대신할 수 없으며, 그 길 떠나는 입성인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음도 기억할만하다.


김준혜 / 부동산 에이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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