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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성령을 따라 행하라

이대열 목사 (열방침례교회)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6)

성령은 창조의 영, 진리의 영, 생명의 영, 부활의 영이시다. 성도는 성령으로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 부활을 경험한 자다. 성령으로 새생명 얻은 존재이기 때문에 매우 자연스럽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산다. 성도는 성령을 따라 성령이 이끄시는 데로 성령께 순종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이렇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은 율법의 지배아래에 있지 않는다. 즉 자유를 누리며 육체의 소욕을 이길 수 있다.

그런데 성령은 영이시므로 눈에 보이지 않고 감각적으로 경험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초자연적인 경험이다. 말로 설명할 수 없고 형상으로 그려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성도는 영적인 눈이 떠지고 영적인 귀가 밝아져서 초자연적인 성령의 인도하심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런면에서 신앙생활은 신비를 경험하는 것이다.

성도란 이미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는 존재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품는다. 이 마음이 전혀 없다면 거듭남의 경험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신앙고백을 다시 해야 한다. 이렇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는 더 이상 율법아래 있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령의 열매는 율법이 요구하는 의를 만족시키기 때문이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2, 23)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와 율법이 서로 충돌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령의 열매는 율법에 반대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이것은 매우 당연한 말씀이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간절히 바라는 자는 결국 성령의 인도하심을 경험할 것이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자는 죄를 짓더라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회개하며 결국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는 성숙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눈이 어디를 더 많이 집중하여 보아야 되는가? 성령을 따라 행하라는 말씀인가? 아니면 성령의 열매인가?

즉 성령의 열매는 행위요 드러나는 성품이요 우리가 쉽게 확인하고 따라갈 수 있는 덕목들이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를 자세히 살펴보면 불신자들에게도 드러날 수 있는 성품들이다. 기독교인들만이 가질 수 있는 덕목들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기독교인들의 성품이나 불신자들의 성품이다.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성품이 더 온화하고 더 사랑이 많은 것 같지 않다. 때로는 불신자들 보다 더 악하고 잔인하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성령의 열매 자체가 복음인양 착각해서는 안된다. 기독교 밖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상식과 교양을 복음인양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람에게서 아무리 뛰어난 성품이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그 성품을 통하여 복음을 나타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성도가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은 성품이 아니다. 성품교육도 아니다. 성품교육은 불신자들도 세련된 교육의 방식으로 열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도가 추구하고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은 성품이 아니고 어떤 인생의 업적이나 결과도 아니다.

성도가 더욱 진지하고 중요하게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삶은 오직 하나님(성령)을 추구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에 연연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라.

마귀론자들은 마귀에게 눈을 돌리게 한다. 율법주의자와 도덕주의자들은 성령의 열매에 눈을 돌리게 한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를 원한다면 그 열매를 가능하게 만드는 성령께 집중하는 것이 더 옳은 길이다.

즉 성도가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이지 성령의 열매가 아니다. 관계가 먼저이고 관계가 항상 가장 중요하다. 결과나 열매는 관계를 통하여 오는 것이다.

만약 열매가 좋지 않은 것이 열렸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성실하게 갖지 못하였다는 것을 반증할 것이다. 즉 하나님을 자기 의로움을 세우고 자기의 욕망을 성취하는 도구로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기도생활을 많이 하고 많은 봉사를 하였는데 모두 다 자기 의와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한 것에 불과하였다는 것이다.

기도생활과 교회봉사 그리고 심지어 매주 수편의 설교를 한 설교자임에도 그 열매가 육체의 열매라면...그는 겉으로는 가장 경건하고 헌신된 자이지만 성령을 따라 행하지 않은 것이고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다.

바울은 율법의 조항 하나 하나를 열거하며 그렇게 살라고 권면하지 않았다. 또 성령의 열매와 같은 성품을 좇아 살라고도 하지 않았다. 오직 성령을 따라 살라고 권면하고 있다. 성령을 따라 행하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감이 오지 않을 수 있다. 마치 뜬 구름 잡는 것 같을 수 있다.

이를 위하여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를 권면한다. 그리고 성령을 따라 행하라는 말을 실증적으로 경험하기를 원한다면 이렇게 권면할 수 있다:

“성경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따라 행하십시오”.

이대열 목사 (열방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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