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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개척 역사 뒤에 숨은 원주민의 눈물

[LA중앙일보] 발행 2017/08/23 미주판 13면 기사입력 2017/08/22 18:52

신현식 기자의 대륙 탐방

미국에서 제일 큰 카우보이 박물관 내셔널 카우보이 앤 웨스턴 헤리티지 뮤지엄의 모습.

미국에서 제일 큰 카우보이 박물관 내셔널 카우보이 앤 웨스턴 헤리티지 뮤지엄의 모습.

오클라호마 다운타운의 히스토리 센터는 오클라호마의 역사와 현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오클라호마 다운타운의 히스토리 센터는 오클라호마의 역사와 현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오클라호마 주는 원유 생산량 5위, 천연가스 생산량 3위, 원유 저수지는 5번째인 산유주다.

오클라호마 주는 원유 생산량 5위, 천연가스 생산량 3위, 원유 저수지는 5번째인 산유주다.

오클라호마 (Oklahoma)

1992년 개봉한 탐 크루즈와 니콜 키드만 주연의 영화 '파 앤드 어웨이'에는 수백 마리의 말들이 장관을 이루며 달려나가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영화의 배경인 오클라호마를 찾게 됐다. 오클라호마 시는 도로변에 자주 등장하는 아메리칸 인디언 관련 광고를 제외하면 인접한 텍사스의 여느 도시와 같은 느낌이었다. 도심을 벗어나면 넓은 농지와 목장들이 펼쳐지는 전원적인 분위기다.

1889년에 일어난 오클라호마 랜드 런은 서부로 밀려드는 백인 정착민에게 땅을 나눠줬던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오클라호마 곳곳의 랜드 런 출발선에 모여든 인파가 약 5만 명이었다. 이들은 말과 마차를 타고 출발선에 대기했다. 마침내 1889년 4월22일 정오에 미군이 하늘에 총을 쏴 출발신호를 하자 사람들은 미친 듯 내달리기 시작했다. 좋은 땅을 찾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려나갔다. 누구든 원하는 곳에 깃발을 꽂으면 자기 땅이 되는 것이었다.

지금의 오클라호마 주 캐나디안 카운티, 클리블랜드, 킹피셔, 로간, 오클라호마, 페인 카운티의 빈땅이 백인 이주민들에게 불하됐다. 한 사람당 평균 160에이커씩 불하된 토지의 가격은 공짜나 다름없었다. 5년간 경작하면 무상이었고 6개월만 경작해도 에이커당 1달러 25센트였다. 오클라호마주 일대 188만여 에이커를 1만 2000여 가구가 차지했다.

1934년까지 미국 전역에서 이뤄진 랜드 런으로 백인 이주민들에게 불하된 땅은 대한민국 면적의 33배 규모 2억7000만 에이커였고 약 200만 명 이상이 혜택을 입었다. 미국의 수많은 대형 농장과 목장이 탄생한 계기가 됐고 기계농업이 발달한 이유가 됐다.

미국 정부의 정책은 랜드 런을 통해 원주민을 쫓아내고 서부를 개척하는 것이었다. 땅을 차지해 성공한 백인들의 이면에는 고향땅을 빼앗기고 오클라호마에 강제이주해온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비극이 깔려 있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미국 동남부에 백인 인구가 늘어나자 19세기 초부터 1890년까지 대대로 살아온 땅을 뺏기고 학살을 피해 쫓겨났다. 아메리칸 인디언 30개 이상 부족들이 오클라호마 주로 강제이주 했다.

1831년 미시시피, 앨라배마에 흩어져 살던 촉토 족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필두로 치카소족, 머스코지족, 크릭족, 세미놀족 그리고 체로키족이 고향을 떠나 강제이주 당했다. 강제이주는 '눈물의 길'이었다. 도보로 이주하면서 추위와 질병, 배고픔으로 수천 명이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사망했다. 이후 백인 이주민들이 아메리칸 인디언들만 사는 오클라호마에도 물밀듯 몰려들자 미국정부는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땅을 다시 빼앗았다. 땅은 랜드 런을 통해 백인 이주민이 차지했다.

아메리칸 인디언 땅을 빼앗고 정착한 오클라호마주 사람을 일컫는 별칭이 먼저 차지한 사람들이라는 뜻의 수너스(sooners)인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백인들이 애써 감추는 미국서부 개척 역사는 원주민들의 고통과 슬픔을 배경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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