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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로버트 리 vs. 로버트 리

남북전쟁과 6.25는 어찌 보면 닮은 점이 적지 않다. 우선 내전이란 점에서 그렇다. 갈등 역시 치유되지 않아 여전히 진행형이다.

미국선 북군이 이겨 대륙통일의 대업을 이뤘는데도 후유증이 가시지 않는 걸 보면 내전이 그 사회구성원들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기는지 가늠할만 하겠다.

전쟁이 끝난 지 150년이 넘었고, 또 그 사이 세계패권을 잡았는데도. 남북전쟁 사상자는 무려 200만 명. 당시 전체 인구의 10%가 조금 넘는 숫자다. 얼마나 끔찍했을지 상상조차 어렵다. 동족 간에, 또 한때 한솥밥을 먹었던 병사들이 남과 북으로 갈려 총뿌리를 들이댔으니.

전쟁과 관련한 최대 논란거리는 로버트 리, 바로 남군 총사령관이다.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의 인종분규 사태도 그의 동상철거를 둘러싸고 벌어진 것이다. 로버트 리, 그는 과연 애국자인가 반역자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북군에 항복한 뒤 제발로 걸어서 고향 버지니아로 갔다. 거리마다 환영인파가 넘쳐났다. 패장인데도. 워싱턴 대학(훗날 그의 공적을 기려 워싱턴 & 리로 개명)이 그를 총장으로 모셨다. 그는 세상의 온갖 영예와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며 여생을 마쳤다.

그렇다고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링컨이 암살당한 후 대통령직을 승계한 앤드루 존슨은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며 로버트 리를 군사재판에 회부할 뜻을 굳힌 것. 반란군의 수괴로 처형해 희생제물로 바치겠다고 별렀다.

이때 율리시즈 그랜트가 등장한다. 그가 누구인가. 북군 총사령관으로 승리의 주역 아닌가. 로버트 리에게 반역 혐의를 씌우면 사령관직을 사임하겠다고 대통령을 몰아 세웠다. 항복문서엔 남군 병사들의 안전 귀향과 사면 조건이 들어있다며 이 조항의 준수를 요구한 것.

그랜트는 역사에 이런 기록도 남겼다. "대통령에 지워진 가장 무거운 책무는 국민 대통합이다. 로버트 리를 사법처리하면 남과 북의 깊게 팬 골은 영원히 메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로버트 리 인가. 당시 남부인들 사이에서 회자됐던 키워드 '로스트 코즈(Lost Cause)' 곧 '실패한 대의(또는 목표)'를 살펴봐야 답이 나온다.

비록 전쟁에선 졌지만 '대의'에서 만큼은 결코 패하지 않았다고 믿었지 않은가.

부의 추구와 기독교 복음주의, 그리고 백인우월주의가 그들에겐 '대의'였다. 로버트 리는 삶 자체가 '로스트 코즈'의 전형이다. 일부 극우성향의 백인들이 그의 동상을 신주 모시듯 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가 아닐까 싶다.

로버트 리도 노예제도 폐지를 주장하기는 했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 보면 섬뜩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데도 흑인을 열등한 인종으로 다뤘다. 노예신분일망정 아프리카에서 보단 삶의 질이 훨씬 낫지 않느냐는 등 망언도 서슴지 않았다. 육체적 고단함 쯤이야 뭐 그리 대수냐는 말일 터. 심지어 노예 가족을 떼어내 따로 팔았다는 기록도 남아있는 걸 보면 흑인에 관한 한 죄의식이 없었던 것 같다.

이번 주말(2일) 로버트 리가 또 다시 언론의 조명을 받는다. 샬러츠빌에서 열리는 버지니아 대학 풋볼 경기에서다.

당초 ESPN이 아시아계 아나운서인 로버트 리에게 중계를 맡길 예정이었으나 유혈사태가 빚어지자 남군 사령관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뺀 것. 황당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 연출됐다. 한인들 가운데도 로버트 리가 얼마나 많은데. 그 분들도 도매금으로 홀대당할까봐 괜히 우려스러운 마음이다.

로버트 리, 백인우월주의자들에겐 '애국자'로 보이겠으나 흑인을 비롯한 소수계에겐 인종화합의 대의를 거스른 '반역자'가 아닐까.


박용필 /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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