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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따로 또 같이 가는 길
박명희/VA 통합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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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7/09/01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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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잔치는 엄마만 하는 줄 알았다. 우물쭈물 하다 보니 나와 남편도 그만 환갑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난 인연이었을까? 작고 마르고 까맣고 품성이 별로인 서울 토박이로, 눈이 쪽 째지고 키가 작고 성깔이 있는 남자가 이상형이었던 이상한 나는 교사로 지내며 별다른 꿈도 없이 없었다. 인생은 그저 시시했고, 별로 하고 싶은 것도 뜨거운 열정도 없었다. 사랑의 기쁨이나 결혼이란 단어는 나와는 먼 거리에 있었다.

수탉끼리 모여 만든 촌스러운 밴드에서 드럼을 치며 대학가요제 참가가 꿈이었던, 눈, 코, 입, 키까지 뭐든지 크고 알 수 없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그 남자는 연두색 구두와 연두색 단추가 수없이 달린 남방을 입고 장발로 서울에 나타나 나의 모든 것을 뒤집어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눈에 콩 꺼풀이 씌어서 궁합을 맞추고, 서로의 반려자로 살면서 어언 35년이 지나 환갑이 되었다. 이제는 눈빛 한 번과 한마디만 들으면 모든 것이 파악될 정도로 서로가 나보다 더 나를 잘 알고 있고, 언제나 내 편인 사람으로 살아간다.

친구 대부분은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추억이 있다. 그들은 따스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내게는 몇 가지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제외한다면, 지난날들은 마음이 비어있고 추웠고 스산했다. 그래서인지 친구에 대한 집착이 심했고, 사랑과 따스함을 목말라하며, 사랑받는걸 표현하고 느끼고 싶어서 비굴해지고 구걸하던 시절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보이며 바라는 건 평가와 비판이 아니라 용서와 위로를 원하는 것이다.

참으로 다행이고 다행이다. 나는 결혼을 한뒤에야 마음이 따스해지고 사랑을 나누어 주게되었고 내가 소중한 만큼 상대가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물론 감정이 풍부하고 변덕이 심한 나와, 차분하고 이지적인 남편과 마음의 칼날을 세우고 할키며 상처를 주기도 하였다. 그 중에도 나만 없는 아기를 가지려고 온갖 쓸데없는 피와 땀과 돈을 깔고 다녔다. 이제는 속알머리가 없어 속머리가 빠진 그와, 주변머리가 없어 주변머리가 하얗게 되는 나는 지금처럼 앞으로도 서로가 등긁어 주며 살아가려 한다.

쓸쓸하고 나이가 들수록 서른 즈음에 남매를 두고 떠난 남편에 대한 그리움으로 평생을 살아간 친정엄마를 떠올린다. 다음날 다시 볼 수가 없다는걸 알았다면 보기만 해도 아까운 남편인데 싸울일이 뭐 있냐며, 니가 받고싶은 만큼 남편에게 잘하라고 하신 가르침을 항상 되새기며 살아간다.

그나저나 선물은 뭘로 하나 고민하는 나에게 재주 많은 누구처럼 숨겨서 불린 돈이 없냐고 묻는다. 아무리 남편 돈도 내 돈이고 내 돈도 내 돈이지만 곰곰히 생각하다, 아이들이 십년전에 만들어준 명함이 거의 다 떨어진 게 떠올라 멋진 디자인의 명함을 주문했다. 어디를 가도 바지 한가랑이에 두 발 넣고 따라 나서서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는 마누라는 평생의 선물이 될것이다. 죽기 전에는 절대 죽지 않으니 헤어짐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수성찬을 차려서 온 가족을 불러모아 잔치를 벌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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