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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정 칼럼] 팔불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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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타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7/09/05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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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끼리 모이면 만만한 단골화제는 남편 흉이다. 그 자리에 없는 사람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예외로 자기 남편이나 자식 이야기는 할 수 있다. 그래서 듣다가 나도 한 자락 끼고 싶어 남편 이야기 좀 하려면 친구들은 너는 할 말 없으니 입 다물고 있으란다. 네 남편 같은 사람 드물다며 하나같이 나를 몰아붙이니 말을 제대로 꺼내 보지도 못한다. 이럴 때 보면, 내 친구들은 제 친구가 누군지도 모르는 것 같다.

이야기가 자식들로 넘어가서 친구들이 자식 흉을 할 때 나는 친구들이 말한 대로 입 다물고 있다. 그러면 친구들은 내게, 생전에 자식 허물 말하는 것 한 번도 못 봤다며 자식한테 유난스럽다면서 팔불출이라고 또 몰아붙인다. 내가 속이 워낙 넓으니(?) 이런 나쁜(?) 친구들과 교류가 이어지는 게 틀림없다. 이렇게 친구들은 나를 자식이라면 벌벌 떤다고 팔불출이라고 하지만, 약간 배신감 느껴지는 장면인데 정작 내 자식들은 그게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냐는 표정이다.

나 자신이나 남편보다 딸과 아들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살아온 것은 사실인데 자식들의 어리둥절한 표정은 좀 섭섭하기는 하다. 나도 그 섭섭함에 맞서기라도 하듯 요즘에는 이 모든 사랑과 관심이 아들의 아들에게로 내려갔다.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아기가 이토록 사랑스러울 수가 있는지 알 수가 없고 딸이나 아들보다 더 보고 싶다는 것이다. 친구가 대전에서 서울까지 손자 이야기만 하고 왔다고 다른 친구들이 핀잔을 할 때, 나도 한 소리 보탠 적이 있는데 이제 남의 말 할 처지가 아니다.

나는 이전에 팔불출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남에게 자식의 허물도 자랑도 이야기를 하는 적이 없었다. 그런데 손자 이야기는 누가 물어보지도 않는데 아기가 두 돌도 안 되었는데 엄청 크다고 말하기도 하고,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데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주지 않나 주책이 없어지는 건 잠깐이다. 이전에는 별로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는데 아기가 청년이 된 때를 상상하다 보면 마음이 들뜨며 그때까지 살아도 좋을 것 같다(?)는 욕심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손자의 등장은 내게 이렇듯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엄마도 되어봤고 할머니도 되어봤으니 이만하면 성공한 인생이 아니냐고 하던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그 말대로라면 내게 성공한 인생(?)을 가져다 준 손자는 고마운 존재이다. 그래서인지 남들 다하는 발달과정이 너무나 대견하고 신기한데다 평범 한 외모도 내게는 엄청 잘 생겨 보인다. 자식도 모자라 이제 손자에게까지 정신을 못 차리니 팔불출이란 말을 들어도 싸다.

아무리 자식이 귀하다 한들 자식에게 미흡함 없이 만족한 부모는 없을 것이다. 섭섭할 때도 있고 불만스러울 때도 있지만 아이들을 키울 때 아이들이 내게 주었던 기쁨은 언제나 나를 행복하게 한다. 낳을 때 기뻐하고, 아이가 걷고 재롱을 떨고 말을 배울 때 주었던 기쁨이 어찌나 가슴을 뿌듯하게 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꿈같이 느껴진다. 아이들이 클 때 주는 재롱과 기쁨이 부모에게 하는 효도의 전부라고 하는 말이 있다. 그렇지만 부모는 그 짧은 효도의 시간을 오래도록 기억하면서, 평생을 사는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은 모를 것이다. 나를 웃음 짓게 하는 기억 속에는 반드시 저희들이 함께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기억을 할 때면 나의 마음이 어느 때보다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팔불출이, 못난이 짓도 아니며 흉 볼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정은 가장 중요한 세계이고 그 세계를 넘치는 사랑으로 감싸 안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풍부한 사랑은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을 줄 것이고 좋은 성품을 형성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만 분명히 가르친다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감싸는 일은 좀 넘쳐도 괜찮지 않으냐는 것이 자타공인 ‘팔불출의 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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