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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때는 바야흐로
김준혜/뉴스타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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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7/09/08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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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년 여름이 한창이던 어느 날 한 중년의 사내가 허드슨강 변에서 결투 신청을 받는다. 그는 결투로 아들을 잃은 적이 있어 싸움을 원치 않았으나, 자신의 명예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목숨을 건다. 결투는 뉴욕 주법의 금지로 허드슨강을 건너 합법인 뉴저지 쪽으로 옮겨져 벌어졌다.

결과는 당시 부통령 에런 버가 승리하고, 정적인 알렉산더 해밀턴은 오른쪽 골반에 총알을 맞아 척추까지 관통한 치명상으로 다음날 사망했다. 미국의 3대 부통령과 초대 재무장관이 선거 후 사적 감정을 못 이겨 총질로 끝을 맺은 초유의 비극적인 사건이다.

해밀턴은 연방주의를 표방한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오른팔 같은 존재였다. 따라서 반연방주의자인 토머스 제퍼슨과는 사사건건 부딪치는 정적이었다. 독립전쟁 비용을 분담하는 문제로 재무장관이던 해밀턴과 대척점에 섰던 제퍼슨. 그는 미국의 수도를 북부인 뉴욕에서 남부의 경계인 오늘날 워싱턴 D.C로 옮겼다.

제퍼슨이 2대 대통령이 되어 훗날 재선에 도전할 때, 해밀턴은 에런 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으려고 제퍼슨을 불가피하게 도왔다. 그런데 그게 사달이었다. 어느덧 씻지 못할 사적 앙금으로 남았다. 선거에 패한 에런 버가 끝내 해밀턴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빌미가 되어버렸다.

이른바 종로에서 뺨 맞고 동대문에서 화풀이하는 격인데 그의 화풀이는 비단 동대문에서 그치지 않고 프랑스까지 이어졌다. 앙심을 품고 프랑스로 건너간 에런 버는 자신의 조국인 미국을 공격하도록 나폴레옹을 집요하게 설득했다. 하지만 국내정치로 머리가 아픈 나폴레옹이 이를 묵살했고, 에런은 뻔뻔하게도 다시 미국에 돌아와 변호사업을 하면서 정가 진출을 노렸다. 하지만 제퍼슨을 중심으로 한 워싱턴 정가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세월은 흘러 운명의 결투가 있은 지 200년이 지난 후 2004년 허드슨 강가 바로 그 결투의 장소에서 두 집의 후손들이 모여 역사와 피의 결투를 재연하고 그나마 어색한 화해를 했다. 벤저민 프랭클린과 더불어 대통령이 아니면서도 달러화 지폐(10달러)에 얼굴을 올린 해밀턴의 오늘날 정치적 위상은 모르겠으나 현재 그의 문화적 위상은 실로 대단하다.

최근 브로드웨이에서 알렉산더 해밀턴의 일대기를 엮은 뮤지컬이 한창 화제다. 빠른 랩으로 대사를 소화해내는 파격과 힙합 특유의 재치있는 가사전달, 시대를 뛰어넘는 감동까지 담아내면서 짧은 미국의 역사물을 성공한 뮤지컬 반열에 올려놓았다.

우리와 같은 이민자가 이렇게 많이 살고 있으리라고 당시 조지 워싱턴과 해밀턴이 그리고 에런 버와 제퍼슨이 상상이나 했을까? 그리고 트럼프 시대를 그들은 어떻게 받아내고 있을까. 참으로 격세지감일 것이 분명하다.

‘바야흐로’는 ‘이제 한창’ 또는 ‘지금 막’의 의미를 담고 있는 순수 우리말 부사이다. 영어로는 ‘in full swing’, ‘on the point of’ 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바야흐로의 진짜 어원은 ‘밤이 지나 새벽으로’라고 한다. 신산하고 고단한 어둠의 밤이 지나고 흘러 새로운 날을 알리는 바로 여명의 시점, 그 새로운 전환의 시점을 어느 문사의 감흥을 무릇 흉내 내 이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려본다. “그것이 새로운 날의 전야인지 혹, 시대의 마지막 종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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