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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호흡, 삶의 음악

민은기/서울대 교수·음악학

요가를 배운 지 몇 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몸을 움직이는 일이 만만치 않다. 지도하는 선생님은 어려운 자세일수록 호흡을 부드럽게 해야 한다지만, 말이 쉽지 제대로 자세를 취하는 게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운동이 끝나고 난 후 매트와 수건이 온통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한다. 우리 몸의 70%가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과학적 사실이 눈으로 명징하게 확인되는 순간이다.

숨쉬기를 강조하는 것은 요가나 단전호흡과 같은 종류의 운동만이 아니다. 모든 운동에서 호흡은 기본이다. 수영을 쉬지 않고 오래 하려면 근육의 힘보다 호흡이 중요하다. 리듬에 맞춰 숨을 들이마시고 뱉어야 지치지 않고 물살을 가를 수 있다. 야구나 골프와 같이 타격을 해야 하는 운동 역시 호흡이 중요하다. 공을 때리기 전에 멈췄던 숨이 한순간에 터져 나가는 타이밍이 타격의 강도를 결정한다. 어디 운동뿐이랴. 아이를 낳기 위한 준비 중에서 산모에게 빼놓을 수 없는 게 출산호흡이다. 하기야 사람이 살아 있다는 증표가 바로 숨을 쉰다는 것이니 호흡이 그토록 중요하다는 게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그래도 노래만큼 호흡이 중요한 분야가 또 있을까. 소리는 폐를 가득 채운 숨이 성대를 통해 빠져나가면서 만들어진다. 숨을 어떻게 들이쉬고 내쉬는지에 따라 음의 길이는 물론 볼륨과 음색까지 달라진다. 성악가는 날숨에 선율을 노래하고 그것이 끝나야 숨을 들이쉰다. 어느 대가의 말처럼 숨을 가지고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숨 위에서 노래하는 것이다. 그러니 "호흡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노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20세기 최고의 테너 엔리코 카루소의 말이 전혀 과장은 아니다. 모든 성악가는 복식호흡을 선호한다. 횡격막을 사용하는 복식호흡만이 유일하게 후두를 긴장시키지 않아 자연스러운 발성이 가능하고, 호흡의 압력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복부근의 긴장을 늦추지 않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성악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일찍부터 발성법을 배운다. 그런데 그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두 팔을 번쩍 들기도 하고, 상체를 숙이거나 허리를 들면서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음대 연습실을 처음 방문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놀라게 되는 장면이다.

호흡은 동시에 다른 사람과의 교감 수단이기도 하다. 누군가와 "호흡을 맞춘다"는 말은 일상적으로도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지만 음악에서는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실내악이나 관현악에서 연주자들의 일사불란한 연주 동작은 모두가 정확하게 동시에 숨을 쉬기 때문에 가능하다.



호흡(呼吸)이란 말은 숨을 내쉬고 들이마신다는 뜻이다. 살아 있는 사람은 누구나 숨을 쉬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숨을 편안하게 잘 쉬는 것은 아니다. 숨은 마신 후에 내쉬는 것이 아니라 내쉰 후에 마시는 것이다. 그래야 공기가 자연스럽게 몸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욕심을 부려 많이 마시려고 해서 마셔지는 것이 아니다. 힘을 빼고 몸 안의 공기를 밖으로 다 내보내고 나면 그 후에 자연스럽게 공기가 몸 안으로 빨려 들어오게 돼 있다. 그래서 '흡호'가 아니라 '호흡'이다. 놀랍고 신기하지 않은가. 하나의 단어가 생명의 숨 쉬는 원리를 이토록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 말이다.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많이 가지려고 억지로 노력하는 순간 원했던 것들을 오히려 놓치게 되는 일이 적지 않다. 언론에 등장하는 유명 인사들의 끝 모를 탐욕과 추락이 그렇다. 이미 가득 찬 것을 더 채우려고 해 봐야 채워질 리 만무하다. 그러니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울 일이다. 숨도 인생도 비워야 채워지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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