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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하비'도 '어마'도 잊힐까

큰비가 오면 곧잘 물에 잠기던 동네에서 유년기를 보냈던 이에게 오래전에 들은 이야기다. 이 동네 사람들은 집을 버리고 피신할 순간이 오면 마지막으로 두 가지 일을 꼭 하고 떠난다. 하나는 뒷간을 나무판으로 덮은 뒤 큰 돌을 올려놓는다. 또 하나는 나무 절구를 기둥에 묶어놓는다. 뒷간을 안 덮으면 배설물이 물을 타고 나와 온 동네를 떠다닌다. 나무 절구는 그대로 두면 물 가는 대로 집 안팎에서 흙담과 흙벽을 툭툭 치고 다니며 물 먹은 담과 벽을 무너트리거나 골병이 들게 한다.

이런 사정은 현대화된 도시에서도 근본적으로 마찬가지다. 물은 따로 보관하는 유해물질을 이곳저곳으로 나르며 건강을 위협한다. 그 옛날 뒷간에 비교할 바가 아닐 것이다. 물에 잠겼던 건축물은 절구에 멍든 흙담이나 흙벽처럼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홍수의 기억마저 서둘러 잊는 것인지 모르겠다. 2008년 뉴올리언스에서 최대 2000명에 육박하는 사망자를 낳았던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그랬듯, 2012년 뉴욕과 뉴저지를 덮쳤던 허리케인 샌디가 그랬듯 폭우의 기억도 결국 잊힐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1000년래 큰비라는 어마어마한 관을 쓰고 텍사스 휴스턴 일대를 쓸고 간 허리케인 하비는 불과 1주일 만에 플로리다에 상륙한 어마에 밀려 피해 복구나 문제점은 조명도 되지 못한 채 망각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듯하다. 그나마 하비는 휴스턴의 피해에 놀란 플로리다주가 서둘러 대피령을 내리도록 경각심이라도 주었다. 어마는 '예상보다 피해 적어 미국·유럽 증시 일제히 오름세' 같은 몇몇 제목으로 남아있다가 세력을 키우고 있다는 또 다른 허리케인 호세가 오기도 전에 기억의 뒷전으로 물러앉을 태세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 잊는 것은 당연하다. 살면서 겪는 그 많은 환난을 어찌 모두 기억의 거미줄에 줄줄이 걸고 살겠는가. 내 집, 내 동네일도 아닌, 기후대마저 다른 멀고 먼 저편에서 일어난, 그저 '580만 가구 정전'이나 '피해액 최대 2620억 달러'라는 영혼 없는 몇 글자로 비극이 막을 내리면 서둘러 자리를 뜨면 그뿐이다.

유엔에 근무했던 지인의 말대로 미국은 한 번도 국가적 차원의 재난을 겪은 적이 없다. 지역적 재난은 있을지언정 국가의 자원을 총동원할 수준의 재난은 없었다. 유엔의 지원 조건을 벗어난다는 이야기다. 우리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잘 짜인 시스템이 알아서 잘 복구할 것이라고 믿는다. 쉽게 잊을 만한 근거로 충분하다. 뒷간과 나무 절구 같은 경험이 없다면 더욱 그렇다.

한데 하비와 어마가 최근 장마만큼 지리했던 LA 인근의 폭염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냥 느낌 때문일까. 모든 게 그저 느낌 탓이라 해도, 얼마 전 동남아를 물바다로 만든 어떤 것이, 엊그제 하루 264mm의 비를 부산이 쏟아부은 어떤 것이 LA의 폭염과 연결돼 있다는 스멀거리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2015 조사에 따르면 샌디를 피해 집을 떠났던 이들 가운데 3만9000명은 여전히 옛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카트리나 때문에 뉴올리언스를 떠났던 이재민 중 10만 명은 1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에도 살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휴스턴에 정착했다가 1주일 전 허리케인 하비와 맞닥트렸으며 뉴올리언스는 지금도 카트리나 이전의 인구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을 근거로 미국에서도 환경 난민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얼마나 기억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 중동에서 폭염이 세상을 태울 듯 기세등등했고 사우디아라비아 제다는 화씨 125도까지 치솟았다는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다.


안유회 논설위원 ahn.yoohoi@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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