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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교차로] 오늘의 길목에서

이기희 / 윈드화랑 대표·작가

물건은 값을 매긴다. 고기는 근으로 달아 값을 매겨 팔고 계란은 숫자로 센다. 쇼핑의 달인인 나같은 사람은 '척하면 삼척'이라 한눈에 물건의 품질을 가려내고 가격표가 머리에 떠오른다. 발품 무지 팔고 푼돈 적잖게 투자해 얻은 기술이다.

값은 사고파는 물건에 일정하게 매겨진 액수다. '값'에는 물건의 '가격(Price)'과 '가치(Value)', '의의(意義, Worth)'가 포함돼 있다. 아무리 가격이 싸도 값어치가 없으면 구매가 무의미해 진다. 클리어런스 세일에 가서 집어온 옷들이 옷장에 걸려만 있고 입지 않는 것은 옷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고 충동구매로 샀기 때문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값을 매길까. 무게로 따진다면 당연히 나같은 사람이 우등급 이겠지만 가치로 따지면 값이 얼마나 나갈지 의문이다. '값지다'는 말은 가치를 지녔거나 어떤 일에 보람이나 의의가 있음을 뜻한다. 죽음도 값진 죽음이 있고 개같은 죽음이 있다. 사람 값도 천차만별이다. 얼굴 값, 키 값, 이름 값, 몸 값, 똥 값, 금 값, 싼 값, 헐 값, 꼴 값, 갯 값, 나이값… 요즘은 흙수저와 금수저로 사람 값을 매긴다. 갯 값은 형편없이 싸게 매겨져 개같이 싼 값을 말하는데 요즘은 갯 값이 금 값이다.

어떤 일로 후배 한 사람에게 지역사회에서 존경받는 원로 어른 한분을 소개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이민 1세의 꿈을 이룬 모범이 되는 분이라 도움이 될 줄 알고 만남을 주선했는데 '늙은 노인의 모습이었다'는 그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또 그분의 과거사를 듣는 일이 지루했다고 촌평했다. 그 분의 사무실에 역사관 처럼 소장(?)된 수많은 상패와 신문기사, 진열된 업적은 박제된 어제의 잔해에 불과했을 뿐 그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했다. 그래서 이렇게 토 달았다. 이민 1세들이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오기와 자존심, 전시하고 까발리지 않았으면 살아남지 못했다고, 삶은 처절한 투쟁이였다고. 그러나 공룡은 살아진지 오래다. 금송아지 키우던 시절의 회상은 젊은이에게 따분한 일이다. 우리 애들이 제일 싫어하는것도 이민와 고생하며 겪은 무용담이다. 지금 오늘이 나의 참모습이다.



'나이 값'은 나이에 어울리는 말과 행동 하는것을 말한다. '나이 들면 나이 값'을 해야 한다는데 나같이 계산 없고 철없이 사는사람은 나이 값 하기가 쉽지 않다.

주름의 숫자나 빛나는 어제의 역사가 나이 값을 올려 주지 않는다. 늙어서 꼴 값 하지 않고 싸가지 없는 노친네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람 값에 품위를 더해야 한다. 품위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 사물이 지닌 고상하고 격이 높은 인상이다. 내세우지 않아도 인생은 드러난다. 왕년에 얼마나 잘 나갔는지 자랑하지 않아도 지금의 내 모습이 과거의 내 모습이다. '싸가지'란 불쌍히 여기는 마음,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겸손하고 양보하는 마음, 옳고 그름을 가릴줄 아는 마음이다. 인생은 설명하지 않아도 향기로 풍겨나온다. 선하고 착하게 산사람은 참하게 늙고 제멋대로 우락부락 산 사람은 못나게 늙는다.

인생은 혼자 그리는 그림이다. 데생도 내가 하고 색칠도 혼자서 해야 한다. 청년은 미래를 꿈꾸고, 장년은 오늘을 살고, 노년은 과거에 산다. 얼굴에 주름 가득하고 손 매듭 굵어져도 환한 미소로 남은 인생을 다잡으면 푸른 가을 하늘에 해바라기 한송이 인생의 화폭에 그려낼 수 있다. 가을의 길목에서 흔들리는 당신이여! 싸가지 있고 나잇값 하는 어른이 되기 위해, 품위있는 오늘을 살기 위해선 과거를 미련없이 버리고 들꽃처럼 오늘의 길목에서 버티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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