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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채수호 / 자유기고가·뉴저지

6개월쯤 전 그들 부부가 가게로 찾아왔을 때만 해도 그는 건강해 보였다. 2년 전 정기 건강검진에서 위암판정을 받은 후 그는 자연요법으로 암과 투병하겠다며 수술받기를 거부해왔다. 내가 수술을 권할 때마다 그는 정색을 하며 '형님, 저는 살만큼 살았습니다. 몇년 더 살자고 몸에 칼을 대고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의료비가 국방비의 몇배라고 들었습니다. 저 때문에 아까운 세금 낭비하는 것 원치 않습니다. 하느님이 부르실 때는 미련없이 가야지요'하며 단호하게 말하곤 했다.

돌이켜보면 그는 누구보다도 나눔과 감사의 삶을 실천하며 살아왔다. 1969년 청룡부대 해병으로 월남에 파병됐을 때는 봉급의 반만 집에 보내고 나머지 반은 어렵게 사는 중학교 후배에게 꼬박 꼬박 부쳐줬다. 70년대 초반 미국에 이민 온 그는 뉴저지 해케츠타운에 있는 초콜릿 제조회사에 취직해서 30여년간 한 직장만을 충실히 다녔으며, 2002년 초콜릿 회사를 퇴직한 후에는 맛사지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최근까지 맛사지 테라피스트로 일해왔다.

홍수나 지진, 허리케인 등 자연재해가 났을 때는 이재민들을 돕는데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적지않은 돈을 기부해왔다. 마사지 일을 하면서 벌어들인 현금은 모아두었다가 아침에 쓰레기를 쳐가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신문배달부, 우체부에게도 수시로 봉투를 건네었다.

그가 태어난 한국과 그가 현재 살고있는 미국은 그가 똑같이 사랑하는 나라다. 그의 가족은 모두 한국 또는 미국산 자동차를 타고 다닌다. 그의 나라사랑은 유별나서 주차장에 일제차들이 많이 서 있는 것을 보면 기분이 몹시 나빠진다고 했다.



나라사랑 뿐 아니라 그는 자신을 품어 살게 해주는 자연도 각별히 아끼고 사랑한다. 비가 오면 홈통으로 떨어지는 빗물을 큰 통에 받아 화단과 텃밭에 주기도 하고 마당 연못에 주기도 한다. 샤워할 때는 한 바가지 정도의 물 밖에 쓰지 않으며 설겆이는 그릇에 세제를 먼저 바른 후 아주 적은 양의 물로 헹궈낸다.

엊그제 만나고 싶다는 전화를 받고 그의 집을 찾았을 때 그의 몸은 몇 개월 사이 몰라볼 정도로 야위어 있었다. 눈빛은 아직 형형했으나 테니스와 운동으로 단련돼 다부지던 그의 근육은 간데없고 뼈만 앙상하게 윤곽을 들어내고 있었다. 한 눈으로 그의 건강이 많이 악화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왕성한 식욕으로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잘 먹던 음식도 이제는 벌레씹는 것처럼 역겨워 입에 댈 수가 없다고 한다. 전에는 향긋하게만 느껴지던 빵굽는 냄새와 커피 끓이는 냄새마저 메스꺼워 아침에 2층에서 1층 거실로 내려올 때는 냄새때문에 고역이라 한다. 오죽하면 부인에게 밖에 나가 커피를 끓이라고 소리를 질렀을까. 음식을 거의 먹을 수 없으니 몸은 마를대로 말라 이제는 더 이상 빠질 살도 없어보인다.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예감한듯 그는 신변을 정리하고 있다. 살고있는 집과 본인 소유의 아파트 한채는 팔아서 반은 부인에게 주고 나머지 반은 사회봉사단체에 기증하기로 리빙윌을 작성해놨다. 그동안 집안에 소장해 두었던 여러가지 아끼던 물건들도 거의 모두 구세군 트럭에 실려보냈다. 얼마 전에는 부인과 네 딸에게 한자로 사랑 '애(愛)'자가 달린 금목걸이와 탄생석이 박힌 반지들을 똑같이 만들어 선물했다.

평생을 통해 나눔과 사랑을 실천해 온 그는 이제 마지막으로 그의 몸까지 남에게 나누어 주고 가려한다. 그는 죽기 전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간, 신장 등 여러가지 장기들과, 혈액, 안구, 뼈, 피부 등을 미리 적출하여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증하기를 원하고 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조웅희 벨라도가 요즈음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는 아픈 몸 훌훌 벗어버리고 하루빨리 하느님 곁으로 가게해달라는 것이다. 천상병의 시처럼 아름다운 이세상 소풍 끝내고 하늘로 돌아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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