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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소설과 영화가 다른 점 4가지

영화 제작자들이 탐낼 만하나 영화화는 쉽지 않은 소설.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문학동네)을 읽었을 때 들었던 단상이다. '누가 죽였을까?' '누가 죽게 될까'란 질문을 쫓아가고, 빠른 전개에 반전까지 있으니 스릴러영화로 각색하기는 좋았다. 하지만 1인칭 주인공 시점 소설이기에,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혼돈의 카오스를 영상 언어로 옮기는 게 과연 가능할까 의문이 들었다. 6일 개봉한 '살인자의 기억법'(원신연 감독)은 예상했던 대로 소설과는 매우 달랐다. 무엇이 달랐을까.

1. 나이도, 고민도 다른 두 살인마

여기 70대 연쇄 살인마 김병수가 있다. 25년 전에 살인은 멈췄지만, 머릿속엔 살인의 추억이 선명히 남아있다. 그에게 살인은 쾌감이고 몰입의 즐거움을 선사했으며, 삶의 동력이었다. 하지만 삶은 얄궂게도 그에게 치매를 선사한다. 치매에 걸린다는 건 비단 과거만 잃어버리는 게 아니다. 미래도 잃는다. 병수는, 딸을 위협하는 젊은 남자 박주태를 죽이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까맣게 잊어버린다. 그는 현재의 덫에 갇힌다. 발버둥을 쳐도 벗어날 수 없는 현재의 연옥에 빠진 것이다.

소설은 '절대악'도 시간 앞에선 당해낼 재간이 없음을 수차례 강조한다. 그게 병수의 가장 큰 공포다. 예컨대 이런 문장. '인간은 시간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치매에 걸린 인간은 벽이 좁혀지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한편 영화 속 병수(설경구)는 부성애가 매우 강한 인물로 딸(김설현)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하다. 딸을 지키지 못할 것 같은 공포, 자신이 딸을 해할지 모른다는 공포가 기억과 자기 존재에 대한 고민을 압도해 버린다.



2. 죄와 벌, 기억에 대한 고민은 어디에?

'인생의 종막에 나는 내가 저지른 모든 악행을 잊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스스로를 용서할 필요도, 능력도 없는 자가 된다. (중략) 아무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유령으로 남으리라.'(129쪽) 소설 속 병수는 살인의 기억을 점점 잃어가는 자신을 자조적으로 바라본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죄를 물을 수 있을까. 죄를 묻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분명한 건 유령에겐 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기억을 해도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다. 마침내 병수가 경찰에 잡혔을 때, 그는 공소 시효가 지난 옛날 사건은 구구절절 늘어놓으면서, 최근에 저지른 살인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치매에 걸리면 가장 가까운 기억부터 지워지기 때문이다. 소설은 기억과 윤리, 기억과 '죄와 벌'에 대해 깊이 천착한다. 영화에선 거의 다루지 않는 지점이다.

3. 병수의 살인, 시대적 배경이 사라졌다

병수가 살인에 열을 올리던 시기는 1970~80년대다. 소설에서 병수의 살인은 한국 사회가 방조했거나 공조한 것으로 묘사된다. 병수는 이렇게 썼다. '사람들이 공산당이라는 유령을 잡으러 다닐 때, 나는 나만의 사냥을 계속했다. 내가 1976년 죽인 한 남자는 무장간첩에 의해 피살된 것으로 공식 발표되었다.'(90쪽) 소설 속 한 형사도 이렇게 말한다. "80년대가 어떤 시대인지 알아? 강원도 경찰도 하이바 쓰고 서울의 대학교 정문 앞에서 화염병 맞던 시대야. 시골에서 사람 몇 죽어나간다고 누가 신경이나 썼을 것 같아."(81쪽) 폭력의 냄새가 짙게 드리운 군사 정권 시대에 지천에 널린 게 살인마였다.

반면 영화는 이런 시대적 배경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 속 병수는 부도덕한 사람들을 직접 단죄하기 위해 사회에 맞서 살인을 저지르는 인물로 묘사된다.

4. 철학적(?)이던 병수는 없다

소설 속 병수는 니체와 소포클레스를 읽고, 반야심경을 왼다. 물론 자기 방식대로 읽는다. 김병수식 오독은 이 소설을 읽는 여러 재미 중 하나다. 마음을 비우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반야심경의 '공'(空)을 머릿 속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치매에 걸린 상태에 비유하는 것이 그 예다.

영화에는 이런 대목이 거의 다 빠졌는데, 하나 살아남은 건 바로 김병수가 직접 쓴 시다. 그는 살인 경험을 가감없이 시로 썼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메타포'로 착각한다. 이 무거운 영화에서 유일하게 웃음이 터지는 장면이다.


김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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