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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블랙리스트와 플라톤

"만일 여러분이 서정시에서든 서사시에서든 달콤한 쾌락의 뮤즈를 받아들인다면, 언제나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법과 이성적인 원리 대신에 쾌락과 고통이 여러분의 도시에서 군주로 군림한 것이다."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당시의 '시'는 요즘으로 따지면 예술이다. 이어서 그의 유명한 '시인 추방론'이 나온다. "모든 것들을 모방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의 도시로 와서 자신의 시를 낭송하는 공연을 개최하기를 원한다면…우리는 그의 머리에 몰약을 붓고 화관을 씌운 후 다른 도시로 보내 버릴 것이다."

플라톤은 예술을 이상국가의 시각에서 봤다. 그의 눈에 예술은 국가의 틀을 흔들 수 있는 위험한 요소가 있었다. 국가의 구성원들은 이성에 따라 각자의 위치에서 성실히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예술은 이를 흔든다. 예술은 이데아를 모방한 현상을 다시 모방한 것으로 진리와 거리가 먼, 통제되지 않고 무절제한 상상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예술관은 시인을 이상국가의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추방령을 내린다. 요즘 한국에서 청산 대상의 하나가 된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그 역사가 길다. 개인보다 국가를 우선하거나 문화를 통제하는 방법을 선호하는 이들은 플라톤의 논리에 따르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



플라톤은 기원전 400년대에 통제 방법도 언급했다. "어린아이의 영혼은 법과 나이 든 사람들에 의해 인정되지 않은 방식으로는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버릇에 빠져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검열과 화이트리스트를 연상할 수 있다. 플라톤은 특히 젊은이들의 국가적 책무감을 고양하는 시를 읽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이 시민이라는 개인으로 인정받으면서 예술은 국가와 의무에서 벗어나 독자성을 인정받았다. 개인으로서 시민이 가진 언론·출판·사상의 자유가 법으로 보장되면서다.

물론 플라톤의 예술관은 오래지 않아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반박을 받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이 마음을 정화한다는 카타르시스론을 펼친다. 플라톤이 예술을 국가의 시각으로 봤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개인의 경험으로 본 것이다.

예술은 전체에서 개인의 품으로 돌아올 때 자유롭다. 그 개인이 누구인가와 무엇을 하는가는 그다음의 일이다. 맘에 들든 들지 않든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우선이다. 1996년 영화 '래리 플린트(The People vs. Larry Flynt)'에서 플린트는 포르노 잡지를 발행할 자유를 놓고 연방대법원에서 싸운다. 엄숙한 표현의 자유를 놓고 싸우는데 하필 포르노라니. 플린트도 "왜 하필 내가 싸워야 하느냐"고 투덜거린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의 근엄한 판사들은 포르노 잡지를 놓고 아주 진지하게 표현의 자유를 심리한다. 선별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니까.

예술은 당연히 개인의 자유로운 창작과 감상의 영역에 있을 것이라 믿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블랙리스트 파문은 플라톤의 시각이 여전히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권력에 대한 견제가 소홀해지거나 자유에 대한 신념이 흐려지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위축되고 플라톤의 시인추방론은 강해진다. 지금 한국이 그랬고 1950년대 매카시즘의 미국이 그랬다. 그건 예술은 힘이 세기 때문에 통제하고 싶은 욕구가 늘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시인 추방론을 외친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유가 보장된 곳에서도 어느 정도의 심의는 있고 사회적 통념의 지배도 받는다. '래리 플린트'에서 판사의 말대로 "표현의 자유만이 우리가 지켜야 할 유일한 가치는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플라톤의 시각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기에 통제의 고삐를 쥐려는 시도를 늘 경계해야 한다.


안유회 논설위원 ahn.yoohoi@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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