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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는 책장] 내 마음속 ‘오두막’

영국 배우 데임 플로라 롭슨은 “자신이 하는 일에 신의 은총을 구하라. 그러나 신께 그것을 대신 해달라고 요구하지는 마라.”고 말했다.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신에게 마음속으로 도움을 청할 수는 있지만 그 일은 신이 아닌, 결국 내가 해결해야 한다는 명언이다. 곤경에 처했을 때 당연하다는 듯이 신을 찾고, 처음에는 부탁으로 시작했던 기도가 이내 구걸, 협박, 떼쓰기로 변질한다. ‘이번 일만 잘 되게 해주면 남은 인생 평생 보답하며 살겠다고.’ 하지만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세상에 신이 있기나 한 거냐’고 쉽게 원망하기도 한다.

윌리엄 폴 영 작가의 소설 ‘오두막’(사진)에도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가족여행 중 사랑하는 딸을 잃고, 슬퍼하는 남자에게 어느 날 편지가 한 통 배달된다. 편지는 가족이 마지막으로 캠핑했던 그 오두막으로 남자를 초대하는 내용이었다. 보낸 이는 ‘파파’다. ‘파파’는 아내가 하나님을 부르는 호칭이었다. 남자는 오두막에 가면 혹시 딸을 죽인 살인범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정말 절대적인 존재인 하나님이 부른 것일까 궁금해하며 오두막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정말 ‘파파’라 불리는 여자가 있었다. 남자가 파파에게 묻는다. “말씀하신 그분이라면, 제가 필요로 할 때 어디 계셨죠?” 파파가 대답했다. “자신의 고통만 볼 땐 날 못 보는 법이네.”

소설 속에서 삼위일체의 성부, 성자, 성령은 각각 인간의 형태로 출현한다. 보통 ‘하나님 아버지’라 부르며 남성화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정말 남자일까? 그동안 단단한 고정관념이 작용해 의심의 여지도 없이 남자라고 여겼는지 모른다. 소설에서는 ‘하나님’을 요리를 즐기는 사려 깊은 흑인 여성의 모습으로 그린다. 예수는 중동에서 온 남자, 그리고 성령은 아시아 여성이다.

소설 ‘오두막’은 삶을 살면서 언제나 마주하게 되는 질문,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에 신은 도대체 어디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슬픔, 상처를 간직한 ‘오두막’이 있을 것이다. 딸을 잃은 슬픔에 잠긴 아버지가 이끌려 찾아간 곳은 바로 자신의 딸이 납치돼 살해되었던 오두막이었다. 그 안에서 남자는 스스로 짓고 부수고를 반복했던 자신의 고통과 마주한다. “이런 비극이 왜 하필 죄 없는 나에게 일어나느냐”고 원망하던 남자는 성부, 성자, 성령 앞에서 충분히 자신의 감정을 폭발시킨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간 남자는 마음 한쪽에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상처가 컸다. 그래서 자신만큼은 아버지처럼 무능력하고 폭력적인 남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데도 그는 딸을 지키지 못한다. 그 상처는 자신을 괴롭힐 뿐만 아니라 남은 가족까지 괴롭게 한다. 그러다 남자는 파파와 커피를 마시고, 예수님과 산책을 하거나 사라유와 정원을 가꾸는 등 공허한 내면을 조금씩 기쁨으로 채워가는 방법을 배운다.

사랑하는 딸을 잃은 상실감, 범인을 증오하는 마음, 딸을 살인자로부터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의식,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한 원망. 모두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지만 대신해줄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결국 이 감정들을 극복하고 견뎌야 하는 것은 오롯이 본인 몫이다. 이 버거운 감정들을 주체하지 못해 누군가는 제 마음을 속인 채 괜찮은척하기도 한다.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는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열심히 기도했다고 하여 가만히 앉아 신의 힘으로 해결되기만을 바란다면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소설 속 남자는 보이지 않는 신을 향해 허공에 맴도는 기도만 하는 대신 오두막을 찾아가 무엇이라도 했다.

소설 ‘오두막’은 파산에 직면한 가장이 여섯 자녀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쓴 소설이었다. 값비싼 선물 대신 삶의 경험이 묻은 이야기책을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어주길 바랐다. 정식으로 책을 출간하기 위해 여러 번 출판사 문을 두드리기도 했지만,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 주제가 종교적이라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다. 결국 자가출판 형식으로 출간해 오로지 웹사이트에서만 판매를 시작했다.

그런 소설이 오늘날 세계 46개국에 번역본이 출간되고, 영화로 각색된 힘은 무엇일까? 소설 ‘오두막’은 예수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의 문제를 떠나 마음속 감정에 집중하고, 스스로 치유해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감정을 정직하게 털어놓고 같이 공감할 관계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소영/언론인, VA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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