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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총기, 공포 이상의 무력감

10월의 첫날 라스베이거스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저녁 10시가 넘어 뉴스 사이트에서 1보를 보면서 든 느낌은 다른 총기 사건과 달랐다. 셀폰으로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영상에는 총소리가 음악 소리에 묻혀 먼 곳의 불꽃놀이 소리처럼 이어지다 잠시 멈춘 뒤 다시 이어졌다. 그 사이 영문을 몰라 조용했던 콘서트장엔 비명과 고함이 음악 소리를 대신했다. 1보가 나올 때만 해도 2명이었던 사망자 수는 20명, 30명, 50명으로 계속 올라갔다. 사망자 수도 놀랍지만 500명을 넘는 부상자 수는 더 놀랍고 사건 현장은 더더욱 놀랍다.

60대 범인의 범행 동기는 아직 밝혀진 것이 없다. 하지만 현장을 보면 범행 목표는 어렵지 않게 추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실외 콘서트장에는 차단벽은 있어도 지붕은 없다. 위에서 보면 아무런 장애물 없이 모두가 온전히 노출돼 있다. 여기에 2만 명이 빼곡히 몰려있다. 이들은 더구나 음악에 몸과 마음을 맡긴 채 외부의 어떤 것에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안전요원은 있겠지만 이들은 콘서트장 밖이 아닌 안의 상황에만 신경을 곧추세우고 있을 것이다. 범인은 그리 멀지 않은 곳의 호텔 32층에서 2만 명을 내려보며 자동화기를 쏜다. 범인은 눈앞에서 움직이는 개인을 쏘는 것이 아니다. 저만큼의 거리를 두고 한 덩어리로 보이는 군중을 쏜다. 그나마도 군중은 어둠 속에 있다.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나.' 이것 외에 범행 목표가 있을까. 상황으로 보면 그렇다.

그래서였을까. 라스베이거스 총격 사건에는 처음부터 다른 사건에서 느끼기 어려운 서늘함이 있었다. 살인은 비정한 것이지만 분노나 열등감, 원망, 포기, 복수 같은 것보다 계산만 있는 듯한 차가움. 누구를 죽인다보다 살인 자체가 목표인 듯한 차가움. 이런 것들은 총의 존재 이유와 일치한다.

총은 미국의 역사에서 자유와 힘을 상징한다. 동시에 현실에서 총은 폭력과 죽음이다. 이 두 가지 총에 대한 시각은 무수한 총기 사건의 충격과 공포의 와중에도 균형을 이루려 애를 썼다. 그러나 최근엔 자유와 힘보다 폭력과 죽음이 더 커지고 있다. 올해 들어 총기 사망자는 7400명을 넘었다. 하루 42명꼴이다. 큰 사건만 168건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최근 6개월 동안 총기 판매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 하락했다. 드문 일이다. 사람들은 총기의 폭력성에 지쳐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나온 것이 총기 규제다. 자유와 힘의 상징을 유지하면서 폭력성을 제어하는 절충안이었다. 자동화기 금지와 구매자 신원 확인 강화에서는 일부 진전이 있었지만 폭력은 더욱 날뛰었다. 총기 규제를 외치는 목소리가 커지고 법안은 자주 상정되는데 총기 사건은 더 잦고 커지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총기 규제가 되겠어'라는 무력감이 이상할 것도 없었다. 이번에도 라스베이거스 사건이 터지자 총기 관련 주가가 올랐다. 지금까지의 관성대로 총기 규제는 멀고 총기는 가까이 있으니 총을 사려는 이들이 늘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백악관도 "지금은 총기 규제 논쟁을 할 때가 아니"라는 성명을 발표한 마당이다.

앞으로 이전의 총기 사건 때 나왔던 이야기들이 반복될 것이다. 범인이 총기를 합법적으로 구매했는지, 현재의 총기 규제 정책이 효과적인지, 정치적 입장에 따라 총기 규제에 어떤 태도를 보일지 말이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총격 사건이 아니라 학살이라고 봐야 한다. 시가전에서 적군을 쏘듯 시민들을 쏘았다. 이젠 총기 규제는 안될 거라는 무력감부터 깨야 한다.


안유회 논설위원 ahn.yoohoi@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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