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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30년, 새로운 30년을 계획하고 있죠"

[가업 잇는다] '신보청기 전문' 3부자

'유망직종' 확신 갖고 창업
시니어 늘면서 고객도 증가
두 아들 합류 새로운 도약
유명 인사들도 많이 찾아


보청기 비즈니스만 올해로 꼭 29년째다. 이민생활 초반, 미래의 유망 직업으로 선택해 시작한 사업이다. 지금은 청각전문의 과정을 이수한 두 아들이 합류해 3부자 가업으로 성장했으니, 분명 선견지명이 있었다.

그 사이 아버지 신준근(73) 원장이 내다 걸었던 올림픽길 LA본점의 '신보청기' 간판은 '신보청기 전문'으로 바뀌었다. 아버지가 탄탄하게 닦은 길에 두 아들이 아스팔트 고속도로를 깔았다고 할까. 신 원장은 가든그로브에도 지점을 두고 23년 째 운영하고 있다. LA점은 큰아들 제임스(43), 가든그로브점은 둘째인 존(40)이 나란히 부원장으로 실질적 운영을 맡고 있다.

제임스 부원장은 UC어바인에서 생물학을 공부했고 노스웨스턴대 대학원에서 청각전문의 과정을 전공했다. 존 부원장도 UC샌디에이고에서 생물학을 전공했으며 캘스테이트 롱비치에서 청각전문의 과정을 수료했다.



제임스 부원장은 지난 2000년 청각전문의(Audiologist) 라이선스를 획득해 판매 및 제작 중심의 '신보청기'가 청각 검사부터 진단과 진단에 기초한 보청기 처방까지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한 '신보청기 전문'으로 사업을 확대하도록 했다.

1978년 LA로 가족 이민한 신 원장은 원래 일렉트리컬 엔지니어였다. 한국에서는 초창기 전자손목시계 오트론 출시로 주목받은 올림푸스전자에서 근무했다. 여느 이민자들처럼 신 원장도 변변한 일자리를 잡기가 어려웠다. 전공을 살려 미쓰비시 TV사업부에서도 일을 해 봤지만 그렇게 안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늘 미래에 유망한 직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날 UCLA에서 미래의 직업을 소개하는 세미나가 열렸어요. 솔깃해서 찾아갔더니, 강연자가 몇 가지 직업을 소개했어요. 인간수명이 늘면서 노인과 관계된 헬스케어, 그 중에서도 난청문제는 사회적 이슈가 될 것이고 보청기 사용이 크게 늘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지요. 보청기가 전자계통이라 해 볼만 하다는 생각도 했고요."

결심이 서자, 신 원장은 캘스테이트 롱비치에 등록해 관련 공부를 했고, 1987년 의료용 보청기 조제 및 판매 라이선스를 획득했다. 이듬해에는 지금의 사업장 자리에 LA점을 냈고, 1994년에는 가든그로브에 지점까지 내면서 왕성하게 일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사업이 잘 된 것은 아니다. 보청기에 대한 인식이 낮아 판매가 많지 않았던 것. 당시 사업체를 유지할 수 있었던 힘은 아내 린 신(70)씨였다. "남편이 보청기 사업에 관심을 두고 있을 때 LA타임스에 구인광고가 났었요. 마침 보청기 제조업체 시멘스에서 사람을 뽑았죠." 린 신씨는 시멘스에 다니면서 익힌 보청기 수리 기술로 외국인 고객들이 맡기는 보청기를 싸고 빠르게 고쳐줬고, 차츰 고객이 늘어 오늘날 사업체가 자리를 잡는 데 큰 힘이 됐다. 시멘스에서 수퍼바이저로까지 진급했던 신씨는 지금도 LA점 리셉션 데스크 업무를 도맡아 처리하며 시니어 고객의 '말동무' 역할까지 하고 있다.

"그 때만 해도 한인타운에 보청기를 파는 곳이 없었어요. 당시엔 난청을 무슨 큰 질병으로 여기던 시절이기도 했어요. 웬만큼 안들려서는 보청기를 쓰려고들 안했지요. 사실, 한인들만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정도의 차이가 있었지만 미 주류사회도 보청기 착용은 드물었죠."

그런데, 보청기가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인식이 크게 바뀌는 계기가 있었다. 1983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소형 전자보청기를 착용한다는 사실을 공표하고 관련 사진이 보도되면서 난청 문제에 대한 이슈가 부각됐다. 그로 인해 그해에만 보청기 업계는 20%의 판매 성장이 있었다. "레이건에 앞서 포드 대통령도 사용했고, 이후 조지 부시, 빌 클린턴 대통령도 보청기를 꼈지만 레이건 대통령 이야기가 화제가 되면서 보청기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됐지요." 보청기 사업을 하면서 신 원장은 유명인사도 많이 만났다. 김대중 전 대통령 부부를 비롯해 삼영화학, 신동아그룹, 대한방적 등 한국의 대기업 회장들을 손님으로 맞았다. "보청기에 대한 인식이 미국에서도 낮았던 때라 한국에서는 더더욱 쓸만한 보청기를 만나기 어렵던 때였죠. 1994년이었다. 당시엔 대통령이 아니었지만 고인이 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함께 방문했고, 두 분 모두에서 보청기를 2세트씩 해드렸다는 게 신 원장의 회상이다. 지금도 LA본점 사무실에는 신 원장 부부가 김대중 전 대통령 부부와 함께 직은 사진이 액자에 담겨 '자랑스럽게' 걸려 있다.

신 원장은 한국에서 온 신부님을 고객으로 맞았던 게 인연이 돼, 지난 90년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두 차례 서울 명동성당에 들러 청각장애인돕기 행사도 지켜오고 있다. 신 원장 부부가 천주교 신자가 된 계기이기도 하다. 신 원장은 "보청기를 껴본 후 목사 설교가 잘 들리고, 드라마를 재미있게 볼 수 있게 돼 너무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는 정말 보람을 느낀다"며 행복한 표정이다.

"두 아들이 애비의 선택을 믿고 군말 없이 청각전문의 공부를 하고 사업체 운영도 이제 사실상 다 끌어가다시피하고 있어 고맙게 느낀다"는 신 원장은 "친절하게 고객을 대하고 정직하게 사업을 한다면 아들 대에서도 보청기 사업은 여전히 보람있는 비즈니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리를 찾아주는 일에 보람과 만족"

때론 친구같은 3부자의 동행

신준근 원장은 지금도 1년에 한 번은 꼭 두 아들과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직무교육 세미나에 참석한다. 라이선스를 유지하려면 매년 20시간의 직무교육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맏아들 제임스 부원장이 신 원장을 모시고 가든그로로 지점으로 가서 3부자가 자동차 여행에 나선다. 세미나는 보통 2박3일 정도 열리기 때문에 3부자는 현지 호텔에서의 숙박과 오가는 여행길 내내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가족 얘기, 신제품 보청기와 환자 얘기 등으로 참 많은 대화를 하게 되지요. 가끔 호텔 방에서는 3부자가 술도 한 잔 합니다." 어머니 린 신씨는 "3부자가 친구 같을 때가 있다"며 살짝 부러워한다.

스트레스가 없을 수는 없다. 시니어 고객들로 인해 제임스 부원장의 받는 스트레스가 크다. "대부분 70세 넘은 고객들이라 아무리 설명해도 금방 잊어버릴 때가 많아요. 방금 얘기한 것을 이해할 때까지 계속 반복해야 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제임스 부원장은 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들려주는 소중한 일을 하고 있어 만족하다고 말한다. "동생도 그랬지만 청각전문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요. 어쩌면 아버지 선택이 훌륭했던 것이었겠죠."

스마트폰이나 이어폰(헤드폰) 사용이 늘고, 자동차 운전이나 콘서트 관람 기회도 많아지면서 난청 환자도 예전보다 많이 늘고 있다. 이에 대해 제임스 부원장은 "지속해서 듣는 세탁기 소리만으로도 청각장애가 올 수 있다"며 "반복하는 소음에는 이어 플러그를 사용하고 지나친 소음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김문호 기자 kim.moonho@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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