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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창] 남한산성과 청나라
이종호/OC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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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17/10/13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17/10/12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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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자호란은 우리 역사에선 가장 치욕스러운 장면이다. 당시 인조 임금은 오랑캐라 업신여겼던 청나라 황제 앞에서 3배 9고두(三拜九叩頭: 세 번 절하면서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찧는 만주족의 항복 의식)의 예로 무릎을 꿇었다. 50만 명 이상의 백성들은 노예로 끌려갔다. 화냥년의 어원이 된 환향녀(還鄕女)나 애비 모르는 근본 없는 아이를 일컫는 호로(胡虜)자식이란 말도 그 때 생겼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남한산성'은 그 때가 배경이다. 그렇다면 조선에 씻을 수 없는 수모를 안겼던 청(淸,1616~1912)은 과연 어떤 나라였을까.

옛날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였던 만주 땅엔 우리 민족 외에도 여러 민족이 명멸했다. 서쪽엔 거란과 선비, 몽골이 있었고 동쪽으론 말갈과 여진이 있었다. 거란은 요(遼, 916~1125)나라를, 몽골은 원(元,1206~1368)나라를 세웠고 여진은 금(金,1115~1234)나라를 세웠다. 17세기 초 중국은 쇠퇴한 명(明,1368~1644)나라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명은 몽골족의 원나라를 몰아내고 세운 한족의 나라다. 임진왜란 땐 조선을 돕기 위해 군대도 보냈다. 하지만 그것이 한 원인이 되어 어려움에 처하게 됐고, 그 틈을 타 누르하치가 흩어져 있던 만주 일대의 여진족을 통합해 세운 나라가 청(처음엔 후금)이다. 직접 10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에 쳐들어와 인조에게 삼전도의 굴욕을 안긴 홍타이지는 누르하치의 뒤를 이은 청의 두 번째 황제다.

명을 멸망시키고 중원을 제패한 청은 대만과 서역, 티베트, 몽골까지 영토를 넓혔다. 중국 역사상 드문 명군으로 꼽히는 황제들이 잇따라 즉위하면서 17~18세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4대 강희제, 5대 옹정제, 6대 황제 건륭제가 그 주인공들이다. 이런 청나라가 건국 초기 한창 힘이 솟구쳐 오를 때 문약한 조선을 마음껏 농락한 것이 1636년 병자호란이었다.

#. 역사가들은 병자호란은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전쟁이었다고 본다. 원래 청나라가 조선에 원했던 것은 정벌이 아니라 명나라와의 일전을 앞두고 후방의 교란을 방지하기 위한 우호 관계였다. 따라서 조선이 조금만 현실적인 외교력을 발휘했더라면 전쟁 자체를 방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조 조정은 그러지 못했다. 명분에만 집착한 무능한 정치, 새로운 국제질서에 무지했던 외교, 철저히 자신의 이익에만 골몰했던 집권층의 이기심 등이 전쟁과 패전의 치욕을 자초한 것이다. 그것도 불과 한 세대 전 임진왜란이라는 처절한 국난을 겪고도 똑같은 잘못을 다시 되풀이한 것이다.

그로부터 380년,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여전히 한국은 강대국들 사이에서 생존의 줄타기를 해야 한다. 거기다 연일 핵으로 으르고 겁박하는 북한까지 머리에 이고 있다.

누가 시작하든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때는 파국이고 공멸이다. 그럼에도 호란 때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무책임한 강경론이 득세하고, 국민의 안위에는 아랑곳 않는 상식 밖의 주장들이 난무한다. 평화를 말하면 매국인 양 매도되고 전쟁 불사를 이야기해야 애국인 양 고무되는 분위기까지 있다.

원래 헛말일수록 소리가 요란한 법이다. 세계 최강 군대였던 청의 창칼 앞에 그나마 더 큰 희생을 막았던 것은 당당하고 멋진 결사항전론이 아니라 당장의 수모를 감당하면서도 나라의 생존을 도모하고자 했던 대화협상론이었다.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다. 전쟁을 말하기 전에 먼저 평화를 이야기 해야 한다. 말길을 트고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나도 살고 너도 살고 모두가 사는 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지금 한국 정부의 인내와 대화 노력을 성원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영화 '남한산성'을 보고 난 솔직한 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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