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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는 책장]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이 가을에 어울리는 달달한 연인들의 사랑 고백 같지만 사실 이 말은 수십 년 전 떠나보낸 딸을 그리워하는 어미의 절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 내용이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사진)은 돌이 채 되기 전에 미국으로 입양된 카밀라의 이야기다. 고향 진남에 출생과 엄마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깊은 심연을 용기 있게 날아온 카밀라 포트만. 까만 머리, 둥글넓적한 얼굴을 가진 그녀가 왜 카밀라인지 물어도 “카밀라는 카밀라니까 카밀라인 거지”라는 무책임한 대답 말고는 들을 수가 없다. 양부에게 건네받은 사진에는 앳된 여자가 어린아이를 안고 있었다.

사진 한 장을 갖고 카밀라는 과거를 찾기 시작한다. 여자가 살았다는 진남에 도착했을 때, 마을 사람들은 약속한 듯 카밀라를 피한다. 어렵게 들은 친부모에 대한 이야기는 섬뜩하다. 친오빠의 아이를 낳았다는 추악한 소문에 휩싸인 채 모두의 외면 속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이를 입양 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리고 그 소문은 어린 소녀들 사이의 사소한 질투심에서 시작된 거짓말이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결국 엄마는 아이를 입양 보내고 외롭게 바닷속으로 몸을 던지고 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가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이다.

바다에 던져진 시신처럼, 모든 감춰진 이야기 속에는 스스로 드러나려는 속성이 내재한다. 그러므로 약간의 부력으로도 숨은 것들은 표면으로 떠오른다. 진실은 개개인의 욕망을 지렛대 삼아 스스로 밝혀질 뿐이다. 카밀라가 진실에 다가설수록 감당할 수 없는 사실들이 그녀를 괴롭히지만 멈추지 않고 심연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나라는 존재, 내 인생. 엄마가 나를 낳아서 내가 존재할 수 있었다면, 이제 내가 엄마를 생각해서 엄마를 존재할 수 있게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알려고 집요하게 파고들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 진실을 모르고 엄마를 그리워하며 사는 편이 훨씬 행복할 수도 있다. 때로는 진실이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깨뜨리기도 한다. 카밀라 또한 그 사실을 잘 안다. 진실을 향해 달려갈수록 그것을 감추려 눈을 감았던 ‘우리’라는 존재의 나약함과 비겁함이 반대편에서 튀어 오른다. 어렸기에 나약했고, 지킬 것이 많아 비겁했던 ‘우리’는 각자가 알고 있던 진실에 대해 조금씩 말하기 시작한다.그렇게 기억의 조각이 합쳐져 25년 동안 묻어왔던 엄마의 이야기가 완성된다. 결국 카밀라의 친아빠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답을 해줄 엄마가 이미 오래전 바다에 몸을 던진 상황이라 당시 여러 사람의 오해와 불신이 만든 비극이었다는 것 정도만 밝혀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심연이 존재한다. 심연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타인의 본심에 가 닿을 수 없다. 타인에게는 내가 짐작할 수 없는 아득하고 깊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거기서 멈춰 서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소설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우리에게는 서로가 건너기 힘든 아득한 심연이 있고, 바로 그래서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이야기를 해석하는 것은 우리의 일일 터. 소설 속에서 카밀라와 엄마는 바닷속에서 만난다. 통영의 신라 시대 이름인 진남 바다에서 열일곱 어머니와 스물넷의 딸은 그렇게 조우한다. 불완전한 소통조차 존재하지 않는 검은 바다가 서로를 잇는 오작교 역할을 한 셈이다. 엄마가 말한다. “25년 전의 나는 너라는 날개를 품은 행복한 사람이었다.” 바닷속에서 엄마 얼굴을 본 카밀라는 엄마의 자취에 머무르며 그때의 엄마와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누군가의 상황과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날개가 있다면 심연 위를 훌훌 날아 상대방의 본심에 가 닿을 수 있겠지만, 날개가 없는 인간이기에 무한히 노력할 수밖에 없다. 결국 그 과정은 사랑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가 타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할 테니까.

이소영/언론인, VA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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