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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오디세이] “한국 잊고 산 참전용사, 한 분도 없었다”

27개국 돌며 한국전 참전용사 만난
전 연방하원의원 보좌관 한나 김씨
“잊지 않고 찾아와줘 고맙다며 눈물”
본지에 ‘대장정’ 기록 독점 연재

대표적인 친한파로 한국전 참전용사이기도 했던 찰스 랭글 연방하원의원(뉴욕, 민주)의 수석보좌관이자 홍보보좌관으로 7년 동안 근무한 한나 김(Hannah Kim, 32)씨. 10년 전부터 “7월27일 한국전 정전 협정체결일을 잊지 말자”라는 뜻으로 ‘리멤버 727’이라는 단체를 조직해 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한국에서 태어나 부모를 따라 6살에 캘리포니아 주로 이민 온 김씨는 2007년 워싱턴 DC로 이주해 조지워싱턴대 정치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UCLA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하고 존스홉킨스국제대학원(SAIS)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했다.

한국전쟁에서 피흘린 유엔연합군 등 26개국을 찾아가 200여명의 참전용사들에게 직접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주목 받았던 김씨는 그의 ‘대장정’을 본지에 독점 연재한다.

▷이같이 대담하고 힘든 여정을 택한 이유와 목적이 궁금하다
-한국전쟁과 한국전 참전용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릴 때부터 롤모델로 삼았던 유관순 열사의 영향이 가장 컸다. 그 분처럼 나도 내가 사랑하는 일에 열정을 갖고 목표한 일을 실행으로 옮기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오랜 기간 워싱턴 DC 정치권에서 활동하며 ‘잊혀진 전쟁’이라고는 불리우지만, 너무도 많은 이들이 아직까지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한국전쟁’에 열정을 두게 됐다. DC에 와서 한국전 참전용사를 처음으로 만났는데 “한국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피부에 와닿았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어렸지만 끝나지 않은 전쟁을 끝내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이루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거듭하게 되더라. 결국 학생 신분인 내가 전쟁을 끝낼 수는 없지만, 최소한 전쟁과 관련한 사람들의 의미를 지워지지 않게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했나


-당시 수첩에 3가지 목표를 적었다. 첫째, 매년 7월27일 정전협정체결과 관련한 기념행사를 주관한다. 둘 째, 한국전 참전용사 인정법안을 통과시켜서 7월 27일을 ‘참전용사의 날’로 만든다. 셋 째로는 참전용사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겠다였다. 첫 목표는 정전협정체결 기념행사를 그때 이후 한 해도 빠트리지 않고 올해까지 10년째 해오며 이뤘다. 두 번째 목표는 친한파이자 참전용사인 랭글 의원을 설득해 통과시켰고, 그 인연으로 보좌관으로 일하게 됐다. 세번째 목표는 랭글 의원이 46년 동안의 의정활동을 마치며 은퇴할 때 결심했다. 10년 전 목표 한 바를 지금이 아니면 결코 이룰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에 무작정 실행했다.

▷여정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달라
-처음엔 멋 모르고 시작한 여정이었다. 총 26개국, 그러니까 유엔군 21개국과 일본,스코틀랜드 그리고 당시 적국이었던 중국, 러시아, 북한까지 총 26개국을 가게 됐는데, 북한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참전용사를 만날 수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참전용사가 있다면
-내 기억에는 정말 한 분 한 분 다 소중하다. 특히 많이 생각나는 분을 꼽자면 이탈리아에서 유일하게 마지막 남은 참전용사를 뵌 것이다. 한국 전쟁에 군의관으로 참전했고, 전쟁 이후로는 한국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고 소개 받았는데, 막상 그분 집을 가보니 ‘한국전쟁 박물관’처럼 느껴질 만큼 많은 기록들을 소중히 보존하고 있었다. 또 자신이 손수 작성한 일기책을 내게 주며 자신의 이야기를 많은 분께 소개해달라고 해서 인상 깊었다.

▷할아버지 뻘인 참전용사들을 보고 느낀 점은
-전쟁 이후 태어난 후세들은 자유를 태어나면서 부터 만끽하기 때문에 ‘자유는 공짜로 얻어지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내가 만난 참전용사 할아버지들은 그 사실을 너무나도 뼈져리게 느낀다는 걸 피부로 알게 됐다. 우리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잊거나 그 존재를 아예 모르고 살고 있다. 그러나 내가 만난 참전용사 할어버지들 중 단 한 분도 한국을 잊고 사신 분은 없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감사하고 한편으론 마음 아팠다.

▷참전용사들은 한나씨를 어떻게 맞았나
감사를 전하러 간 여행이었는데 오히려 그 분들이 내게 “잊지 않고 찾아와줬다”면서 고마워 하며 많이 우셨다. 그때마다 “나뿐만 아니라 한국의 국민들, 미국의 200만 한인 동포들, 그리고 전세계 한인들이 여러분 덕택에 이렇게 잘 살고 있다”고 감사한다고 말씀 드렸다. 사실 여행이 끝난 지금도 그분들과 찍은 사진을 보거나, 일기장을 보거나, 손수 쥐어준 기념품을 보면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온다. 어떤 할아버지는 당시 혹독했던 추위에 동상에 걸려 아직까지 검은 손으로 살고 있고, 콜롬비아에서 만난 참전용사 할아버지는 얼굴에 총상을 입어 수십번의 수술을 받고도 아직까지 완치되지 못한 채 살고 계시다. 그분들을 볼 때마다 희생의 가치를 느꼈다. 그리고 나 혼자 감동을 받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이 감동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나눠야 겠다는 다짐을 했다.

▷북한을 중간에 들렀는데, 결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왜 하필 북한에 갔는지 궁금해하더라. 내가 북한을 방문한 동안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기도 했고 그 이후 핵실험까지 했다. 내가 방문했던 시기는 5월 중순이어서 식물인간 상태로 풀려나 미국에서 사망한 오토 웜비어가 아직까지 살아 있을 때였고, 미국 정부의 북한 여행금지령도 발령되기 전이어서 정말, 마지막으로 남았던 방문 기회였던 것 같다. 모든 나라의 전쟁박물관을 방문하고 참전용사를 만난다는 결심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한국전쟁 당사국인 북한을 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나의 이야기와 여정이 완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을 방문하고 어떤 느낌을 받았나
북한 방문은 두려움을 안고 택한 결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국제정치를 전공했고 미국 의회에서 최장수 한인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북한과 관련한 많은 법안을 다루거나 통과시켰는데, 대부분 다른 사람의 의견을 통한 것들이어서 현실적인 북한의 상황과 정보는 갖고 있지 않았다. 이번 방문을 통해 나름대로 많은 사실들을 알게 됐다. 북한에서는 참전 군인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전쟁기념관과 참전군 묘지 등을 방문했다. 북한 쪽에서 보는 판문점과 개성 쪽으로도 가봤다. 무엇보다 여행을 하며 많은 사람과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물론 북한에서 보고 들었던 것이 100% 진실이 아닌 것을 알지만, 그 경험이 100% 무의미 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북한 사람들을 보고 겪으며 무엇을 생각했나
한국에 갈 때 마다 만나는 한국인의 정과 반가움을 북한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도 느낄 수 있었다. 북한에 다녀 온 이후로는 내게도 북한에 두고 온 이산가족이 있다는 느낌을 갖게 돼 마음이 무겁다. 그렇기 때문에 작지만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노력을 해야한다는 결심을 했다. 인터뷰를 통해 덧붙이고 싶은 것은 북한에 개인 관광객으로 간 것이지, 북한 당국의 초청을 받거나 특별 대우를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밥 한끼도 얻어 먹지 않았고, 일반인으로 관광에만 집중했다.

▷지금 상황은 미북간 일촉즉발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현 상황이 어떤 식으로 해결 되어야 한다고 보는가
-한반도 평화통일을 생각할 때, 필요한 3가지 요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억(Remembrance), 인정(Recognition), 화해(Reconciliation)가 그것이다. 내가 처음 한국전쟁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2007년 당시만 해도, 뉴욕 교향악단이 평양에 가서 연주할 만큼 남북관계와 미북관계가 지금보다는 훨씬 좋았다. 지금껏 공부하면서 느낀 것은 분단이 거의 65년이 됐지만, 정부간 노력만으로는 평화통일이 이루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위정자들에게만 한반도의 미래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민간인들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향후 계획은
-전세계를 돌며 200명이 넘는 참전용사를 만나기까지 각국 한인 지도자 여러분의 도움이 컸다. 이들에게서 전세계 한인들이 한반도의 통일과 번영을 위해서 애를 쓰고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이 위대한 힘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모을 수 있을 지 고민하며 차세대 위주로 할 수 있는 일을 구상중이다.

▷중앙일보 연재를 앞두고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부모님이 미주 중앙일보 애독자이기 때문에 중앙일보에 내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 것이 영광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중앙일보에서 가장 먼저 기사를 내어 주셔서 큰 힘이 됐다. 많은 분들이 그 기사를 읽고 격려와 응원을 해 주셨다. 독자들게 감히 부탁 드리는 것이 있다면, 제 여정을 지켜만 봐주시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 통일이 오는 날까지 다같이 힘 써 주실 분들이 많아지셨으면 하는 것이다. 또 미국 모든 주에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계시는데, 그분들게 감사한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해주시길 바란다.


박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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