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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성희롱을 말하는 용기

하비 와인스틴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어느새 50명이 넘었다. 불똥은 와인스틴의 이런 행동을 알고 있었던 배우나 감독에게 튀었다. 와인스틴과 친분을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진 이들 유명 감독과 배우에게는 성희롱을 방조한 것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이 쏠렸다. 파장은 계속 커져 하비의 동생인 밥 와인스틴도 성희롱 의혹을 받고 있다. 22일에는 30명이 넘는 여성들이 제임스 토백 감독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와인스틴 사례에서 피해자가 많은 것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이런 피해 사실이 오랫동안 공론화되지 않은 점이다. 사건 뒤 나온 이야기로 보면 그가 성희롱을 한다는 소문은 꽤 있었고 개인적으로 이런 사실을 알고 있던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침묵하게 하는 것. 그것도 오랜 세월. 그것이 와인스틴의 진정한 권력이었다. 당한 것보다 당한 것을 말하지 못 하게 하는 것, 그것이 더 큰 권력이다.

와인스틴은 할리우드에서 40년 가까이 권력을 쌓았다. 와인스틴 형제는 1970년대 후반 미라맥스 영화사를 설립해 93년 8000만 달러에 디즈니에 매각하면서 메이저 영화사는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는 영향력과 명성을 누렸다. 메이저 영화사가 장악한 시장에서 당대에 독립영화로 이 정도 성공했다면 전설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는 독립영화도 흥행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그 문을 연 것이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다. 그는 영화제 수상작을 비평가의 호평, 언론 노출로 연결해 흥행에 성공했다. 그가 오스카 수상에 그렇게 공을 들인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런 포뮬러를 '잉글리쉬 페이션트' '펄프 픽션' '굿 윌 헌팅' 등으로 이어가며 독립영화 왕국을 세웠다. 프랑스가 와인스틴에게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한 이유도 '미국에서 외국 영화의 존재와 대중성을 높인 공로'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가 자신의 힘으로 왕국을 건설했기 때문에 오랜 기간 성희롱이 가능했을 수도 있다. 권력을 휘두를 때 이를 제지할 주변환경이 상대적으로 취약했을 수도 있다. 결국 어떤 권력이든 견제받지 않으면 썩는다.

일과 관련된 성희롱의 본질은 권력이다. 그가 권력형 성희롱을 저지른 본질적 이유는 남자이기 때문이라기보다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성희롱은 권력이 클수록, 상대가 권력이 작을수록 쉽다. 피해자 중에는 애슐리 저드 등 스타도 있지만 당시 이들은 스타라는 권력자가 아니었다.

권력형 성희롱은 기본적으로 권력이 없는 이들을 노린다.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권력관계는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출연을 결정하는 것은 무슨 객관식 시험이 아니고 검증의 대상도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권력관계가 끼어들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

비관론은 있지만 피해자가 오랜 침묵을 깨고 털어놓은 것은 중요하다. 이들은 그저 과거의 피해를 털어놓은 것이 아니다. 권력을 향해 말한 것이다. 이제 와인스틴에게도 말했으니 앞으로 있을지 모를 피해자들은 이전보다는 더 쉽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계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 다른 형태의 권력에 시달리는 피해자가 있다면 맞서 이야기할 용기를 주지 않을까. 이번 일을 계기로 성희롱 사건에서는 합의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자는 의견도 나왔다. 법적인 보완 노력은 그것대로 진행되겠지만 말하는 용기를 과소평가할 수 없는 대목이다.

어쩌면 처음에 피해자가 말할 수 있었다면 와인스틴에게도 좋았을 수 있다. 지금처럼 막혔던 것이 한순간에 터지면서 추락하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안유회 논설위원 ahn.yoohoi@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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