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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돼야 한다"

종교개혁 500년, 개혁의 현장을 가다(5)

종교개혁 이후 또 다른 늪으로
교리 싸움과 종파 간 분쟁 극심
실천과 생활 강조하는 경건주의
새로운 신앙 개혁 운동으로 태동
모라비안들이 간직한 신앙과 역사
그러나 경건주의도 곧 쇠퇴의 길로


500년 전 오늘(1517년 10월31일) 마르틴 루터는 독일의 비텐베르크 성교회 정문에 95개조 논제를 붙였다. 당시 중세 종교의 시대적 오도에 대한 저항이었다. 종교개혁은 그렇게 불이 붙었다. 시대의 사조는 그때부터 완전히 대전환됐다. 지금 개신교계는 곳곳에서 그 이후 500년인 현재를 기념한다. 그러나 인간은 얼마큼 완전한 존재인가. 신앙에 귀속된 인간은 바른 길을 걷기 위해 중세 종교를 개혁했었다. 과연 진정한 개혁은 이루어졌는가. 개혁에 대한 안도는 개인과 사회를 또 다른 늪에 빠지게 했다. 당시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100여 년 후 독일에서는 새로운 신앙 운동이 일어났다. 급진적으로 발화됐던 종교개혁이 생명력을 잃어간 탓이다. 이는 오늘날 개신교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일 헤른후르트=장열 기자

8월25일 헤른후르트 지역. 독일 동부의 아주 작은 마을이다. 체코와 폴란드 국경에 인접한 곳이다.



시골 마을이라 북적대는 도시와 달리 분위기가 너무나 평온하다. 마을 한가운데로 향하니 교회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모라비안 교회'다. 독일의 경건주의가 꽃폈던 시절의 역사를 아직도 간직한 교회다.

독일의 경건주의는 종교개혁 이후 100여 년이 흐른 뒤 서서히 태동했다. 개혁 이후 개신교 종파 사이의 교리 논쟁으로 다툼이 심화된 게 발단이 됐다. 종파 간 분쟁은 분명 종교개혁의 그늘이다. 개신교가 교리 논쟁에 함몰돼 논리, 신조, 체계 등에 신앙의 추가 치우치면서 반대급부로 생겨난 또 다른 개혁 운동이 경건주의였다.

경건주의자들은 교리에만 게토화된 신앙을 일상으로 끌어내고자 했다. 교리보다는 삶을 강조하고 신앙의 실천적 의지를 주창했다.

안내를 맡은 김현배 목사(베를린비전교회)는 "이곳은 아직도 모라비안 교도의 후예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는 교회"라며 "그들은 체코의 종교개혁가 얀 후스를 따르던 사람들로 당시 신앙을 지키려고 이곳으로 피난을 와서 정착했었다"고 말했다.

교회 내부는 상당히 단순하다. 여느 교회들과 달리 일체의 장식 같은 건 찾아보기 어렵다. 하얀 벽면에 나무 의자, 작은 십자가 하나가 전부다. 교회라고 보기엔 너무나 소박했다. 발걸음을 뗄때 마다 나무 바닥에서 삐걱 거리는 소리만이 실내를 울릴 뿐이다.

설교를 하는 강대상을 유심히 살폈다. 아무 문양도 없는 나무 식탁에 초록색 천만 덮어 씌어 있다. 분명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오히려 외형적 치장에 대한 강한 거부가 암묵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그만큼 실질적으로 신앙의 실천을 중시했던 모라비안 교도들의 의지가 곳곳의 여백에서 물씬 묻어나는 듯했다.

나무 의자에 앉아 한동안 설교단을 바라봤다. 순간 거액의 건축 비용을 들여 외형이 비대해지는 오늘날 교회들의 현실이 뇌리를 스쳤다. 진정 누구를 위한 건물이고, 예배 의식일까. 나는 모라비안 교회를 나서 뒤뜰로 나가봤다. 그곳엔 흉상 하나가 세워져 있다. 니콜라스 루드비히 진젠도르프 백작의 흉상이었다.

김현배 목사는 "본래 이 마을은 진젠도르프 백작의 사유지였다. 그는 종교적 박해를 피해 피난온 모라비안 교도들에게 땅을 주고 그들의 정착을 도왔다"며 "훗날 그는 모라비안들과 신앙 공동체를 만들어 세계선교를 위한 기도운동에도 힘썼다"고 설명했다.

마을 내 오솔길을 따라 10여 분 정도를 걸으니 모라비안들이 묻혀 있는 묘지 터가 나왔다. 귓가를 잔잔히 스치는 바람 탓인지 그들의 평안한 안식이 더욱 체감되는 것 같다. 비석은 족히 수백 개는 넘어 보였다. 오랜 세월을 거친 탓에 비석에 새겨진 이름들과 십자가 문양 등은 흐릿해졌지만 그들의 열정과 신앙의 흔적은 선명히 남아있다.

묘지 중간에 작은 언덕을 올라갔다. 거기엔 둥근 모양의 탑이 우뚝 서 있다. 후트버그 기도탑이다. 그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매일 이곳에 올랐다. 탑에 올라가 보니 마을 전경은 물론 저 멀리 폴란드와 체코까지도 한눈에 들어온다.

김현배 목사는 “모라비안들은 세계 선교를 위해 이 탑에 올라 무려 100여 년간 매일 기도를 했다는 내용의 기록이 있다”며 “그들은 매일 저 땅을 바라보면서 조국은 물론 생명력을 잃어가던 독일 교회를 위해서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고 말했다.

진젠도르프 백작이 거하던 집 현관에는 그들이 추구했던 신앙적 가치와 소망이 짙게 배어있는 글귀가 독일어로 새겨져 있다.

‘좋지도 견고하지도 않은 이 집에서 우리는 나그네로서 밤을 보냈다. 우리가 진정 거할 집은 하늘에 있으니 어찌 이곳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유한한 세상에서 영원한 건 없다. 인간도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일까. 루터의 종교개혁만 퇴색한 게 아니다. 경건주의 운동 역시 개인의 체험만을 중시하다 본질을 잃고 이후엔 도덕주의, 신비주의 등으로 변질되는 폐단을 낳기도 했다. 이는 개혁의 주체를 논할 때 주어를 ‘인간’이 아닌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김현배 목사는 “교리에만 치우쳐 메말라버린 시대 속에서 생겨난 경건주의가 당시 기독교 역사에 끼친 영향도 크지만 이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쇠퇴했다”며 “그만큼 신앙이라는 것은 교리, 경건한 생활, 실천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것 없이 균형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라고 평가했다.

신앙의 도상에서 개혁은 안도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동적이다. 그 길을 걷는 인간은 결코 자만할 수가 없다. 멈추면 썩게 마련이다. 그게 종교개혁가들이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고 외쳤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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