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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배우는 마르띤의 스패니시 생활회화 <107>북미 식민사 11

영국과 에스빠냐의 일촉즉발 정세는 식민지에도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다. 본국 보급선의 발이 묶인 것이다. 이주민들은 인디언들에게서 조금씩 식량을 사들였고 남은 씨앗을 파종했으며 물고기를 잡아가며 힘겨운 생존 투쟁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2~3개월만 이런 식으로 버티면 뿌린 씨앗의 수확을 기대할 만했다. 그러나 결국 서로 불편해하던 영국인 정착민들과 인디오 부족 사이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추장 윙기나가 정착지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에 접한 영국인들은 선수를 쳐서 인디오 부락을 기습해 인디오 원로들은 대부분 사살하고 도망치던 추장 윙기나도 죽였다.

이주민들의 기습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더 이상 인디오들에게서 식량 도움을 기대할 수 없게 되어 모두들 걱정에 빠져 있을 때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23척의 함선을 이끌고 로어노크에 닻을 내렸다. 기다리던 보급선이 온 것이며 그때가 1586년 6월이었다.

드레이크는 영국의 전설적인 해적왕이고 북해 해전(무적함대 해전) 시 영국 함대의 부사령관을 맡아서 활약한 인물이다.



로어노크 식민지에 보급 차 들리기 전인 1585년 12월 드레이크는 에스빠뇰라 섬 남부 해안의 에스빠냐 요새인 산토도밍고를 습격했다. 산토 도밍고 요새에서는 드레이크 함대가 접근하는 것을 보고 모든 대포를 바다를 향해 배치한 채 공격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드레이크는 상륙이 불가능한 곳으로 여겨지던 요새 뒤편 절벽에 결사대를 보내 상륙시킴으로써 요새를 뒤로부터 공격하여 어렵지 않게 요새를 함락했다. 결국 드레이크는 25000더켓을 받고 도시 파괴를 중단했으나 이미 많은 가옥이 불에 탔고 항구에 정박하고 있던 에스빠냐 함선 또한 모두 불태워졌다. 로어노크 식민지에 내려 줄 충분한 물자를 확보한 후 식민지에 도착했던 것이다.

▶문의: (213) 381-0041 www.martinspanishcollege.com

백지원(언어학자·역사학자·중앙교육문화센터 스패니시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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