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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맥 세상] 텅 비고 충만했던 어느 결혼식

이원영 / 논설실장
이원영 / 논설실장 

[LA중앙일보] 발행 2017/11/08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17/11/07 22:16

김주석·이지원 커플과 주례를 맡은 최재영 목사

김주석·이지원 커플과 주례를 맡은 최재영 목사

페이스북에서 날카로운 현실 비평으로 1만여 명의 팔로어를 거느리고 있는 박찬운 교수(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지난달 30일 본지 오피니언에 '영혼 없는 대한민국 결혼식'이라는 글을 올려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이곳 한인사회는 한국만큼은 아니더라도 아직도 한국식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허례허식의 관행이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박 교수는 "사실 나는 결혼식에 가면 우울할 때가 많다. 그 많은 하객 수에 놀라고 그 호화스러움에 주눅이 든다…지금 같아서는 내 자식 결혼식을 치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대한민국 결혼식은 낭만도 즐거움도 찾을 수 없는 그저 허례허식일 뿐이다"고 일갈했다.

그는 이어 "이렇게 결혼하는 자녀들의 인생도 딱하긴 마찬가지다. 이런 결혼을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할 것인가"라고 개탄했다.

그의 글을 읽은 이들은 폭발적인 공감을 보냈지만 막상 자녀 결혼식이 내 문제가 되면 그런 관행에서 과감하게 이탈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는 반응도 있었다.

박 교수가 탄식했듯 한국의 '영혼 없는' 결혼식 관행을 과감하게 거부하고 '텅 비었지만 충만한' 결혼식을 올린 40살 동갑내기 커플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생활 근거지인 부산에서 일주일 일정으로 왔다. 지난 토요일 LA인근 말리부에 있는 페퍼다인 대학교 예배당에서 주례를 맡은 최재영 목사 부부와 축도를 부탁받은 동료 목사 부부, 김주석(성서원어 교사)·이지원(미용사) 커플만 참석한 결혼식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두 사람은 돈과 물질이 판치는 한국사회의 결혼식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늦깎이 결혼식을 앞둔 커플은 그들의 결혼식을 어떻게 치를 것인지 고민하다 한국에서 알게 되었던 LA의 최 목사에게 약식 결혼식 주례를 부탁한 것이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 웨딩 복식을 나름대로 준비를 해와 결혼예복 흉내도 냈다. 하객도, 예물도, 축의금도, 꽃단장도, 웨딩마치 음악도, 축가도 없었지만 "멋지고 성스러운" 결혼식이었다며 부부는 오히려 감격해했다.

신혼부부는 경비를 아끼기 위해 중국을 경유하는 저가 항공을 이용했고, 3박 4일 서부여행을 마치고 돌아간다. 혹시 결혼식을 앞두고 집안의 반대나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전혀 아니고 단지 허례허식이 싫어서 둘이 결정한 것이고, 양가에서도 흔쾌히 허락했다고 한다. 물론 한국에서 다시 한번 결혼식을 치를 계획은 전혀 없단다.

주례를 본 최 목사는 "많은 주례를 섰지만 지금까지 그 어느 결혼식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자유함과 성스러움이 식장을 압도했다"고 감격을 감추지 않았다.

감동은 결혼식으로 끝나지 않았다. 결혼식 이틀 전 최 목사와 우연한 식사 자리에서 한국서 온 한 커플의 결혼식 계획을 들은 윌리엄 이(55)씨는 "우리집에서 피로연을 엽시다"고 전격 제안했다. 알지도 못하는 신혼 커플을 위해 정성을 다해 조촐한 바비큐 파티를 열어준 것이다. 이씨와 친구인 나는 이 자리에 초대받아 참으로 비현실적(?)인 즐거움을 함께 나누었다. 가정집 피로연 접대를 받은 이 커플의 표정 역시 감격스러움 그 자체였다.

김주석·이지원 커플은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한국사회와 교계에 신선한 감동을 선사하는 부부가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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