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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방울뱀'의 정치학

지난 2010년 월드컵(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주목을 끌었던 나라는 단연 '축구 후진국' 미국이다. 설마, 설마 하다가 8강에까지 올랐으니 세상에 그런 이변이….

미국이 선전한 비결은 무엇일까. 월드컵을 앞두고는 각국 대표팀마다 응집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온 힘을 쏟아붓는다. 대회가 코앞인데 없던 기술이 갑자기 생겨날 리도 없고. 선수들의 정신력이라도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

유니폼 안쪽 선수들의 심장이 맞닿는 곳에 문구를 새겨 넣었다. '디톰(DTOM)' 딱 네 글자다. '나를 짓밟지 마라(Don't Tread On Me)'의 첫 글자를 따 만들었다. '디톰'을 가슴 깊이 아로 새긴 미국 대표팀은 결국 일을 냈다. '전차군단' 독일을 격파한 아프리카 최강 가나를 상대로 2대1 역전승을 거뒀다. 월척을 낚은 미국에 세계가 놀랄 만했겠다.

그런데 '디톰'은 누구 아이디어였을까. 멀리 독립전쟁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주인공은 크리스토퍼 개드스덴(1724~1805). 조지 워싱턴의 각별한 신임을 얻은 그는 혁혁한 전공을 세워 훗날 '건국의 아버지' 반열에 오른다. 그가 바로 '개드스덴 플래그(Gadsden Flag)'를 만든 장본인이다. 병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개드스덴 플래그'가 미국의 진정한 국기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



노란색 바탕의 깃발 정가운데는 방울뱀이 그려져 있다. 잔뜩 꽈리를 틀고 있는 모양새가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물어뜯을 기세다. 방울뱀 밑에 '나를 짓밟지 마라'는 슬로건이 쓰여있다. 영국이건 누구건 미국의 독립에 걸림돌이 된다면 가차없이 독을 뿜어 제압하겠다는 다부진 결의를 담아냈다.

당시 영국군이 보기에 식민지 민병대는 그야말로 오합지졸에 불과했을 터. 그러나 방울뱀의 독기로 똘똘 뭉친 독립군을 당해낼 수 없었다. 그런 역사가 선수들의 심장을 두들겨 월드컵에서 파란을 일으킨 것이다.

이 대회에서 한국 대표팀 역시 원정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16강에 오르는 쾌거를 일궈냈다. 태극전사들의 유니폼에 새겨진 키워드는 '투혼'. 어쩌면 '디톰'과도 맥이 통하는 슬로건이 아닌가 싶다.

'디톰'은 지난 2011년 미국 특수부대가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을 때도 화제가 됐다. 새벽녘인데도 수많은 뉴욕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성조기와 함께 '개드스덴 플래그'를 흔들어 댄 것. 한낱 테러리스트 주제에 감히 '방울뱀'을 건드려?

'투혼'이 사라졌기 때문일까. 한국 대표팀이 팬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A매치(국가 대표팀 간 친선경기)에서 이겨본 적이 없는 까닭이다.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내년 러시아 월드컵은 참가하나 마나 자조섞인 소리도 들려온다.

대한민국 정부도 다를 바 없겠다. 중국 비위 맞추랴, 북한 껴안으랴, 미국 눈치 보랴. 아마도 싸움을 두려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을 하자는 얘기가 절대 아니다. 살려고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고 하지 않는가. 지도층에게서 그런 결기가 느껴지지 않아 불안해지는 것이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해서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한국 패싱'은 없다고 했지만 그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아메리카 퍼스트' 곧 자국 이익이 먼저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가 시진핑과 귓속말로 무슨 얘기를 할지.

사실 알고 보면 한국 땅에도 방울뱀 못지 않는 독사가 있다. 살모사 말이다. '나를 짓밟지 마라.' 살모사의 살기를 보여줘야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무시당하지 않을텐데.


박용필 /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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