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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트럼프의 강풍
이길주 / 버겐커뮤니티칼리지 역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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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7/11/14 미주판 14면    기사입력 2017/11/13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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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강풍(强風)이 한반도를 흔들고 지나갔다. 바람은 에너지다. 엄청난 힘으로 탁하고 습한 산성 먹구름을 거두어 갈 수도 있고, 반면 평온한 산하를 뒤흔들어 놓고 갈 때도 있다. 이제 차분히 트럼프 강풍이 남기고 간 흔적들을 돌아보아야 한다. 뒷정리와 수습은 우리 민족의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트럼프의 국회 연설을 네 개의 'D'로 정리한다. 첫째가 'Depraved North Korean Regime(사악한 북한정권)', 둘째가 'Developed South Korea(발전한 남한)', 셋째는 'Dependable America(믿을 수 있는 미국)'이다. 결론은 네 번째 'D'다. 그러니 "Don't Test Us(우리를 시험하지 마라!)"이다.

한반도와 관련된 미국의 국익 정리 측면에서 트럼프의 연설은 완벽했다. 그는 북한의 학정을 그림으로 그리듯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반인권.비이성적 사례들을 조목조목 나열함으로써 미국이 북한 정권에 맞서는 일은 헤게모니 확장을 위한 군사적 노력이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역사적 사명이란 대결 구도를 그려냈다. 또한 그는 내부 편 가르기에도 성공했다. 타락한 정권과 고통받는 인민으로 북한의 현실을 양분했다. 이 편 가르기는 거의 애굽의 바로와 히브리 노예들의 대비를 연상케 했다. 이 구도 속에서 물론 미국은 모세의 모습으로 비친다. 트럼프의 국회 연설에 대한 댓글에 유독 눈물이 났다는 고백이 많은 이유일 듯하다.

그는 연설 중에 중국에도 자극을 주었다. 아버지인 중국인의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북한인 부인이 낳은 아이를 양동이에 던져 죽게 한 북한 정권을 중국이 왜 도와야 할 의무감을 느껴야 하냐고 반문했다. 중국인의 민족 우월주의 감정에 호소한 것인데, 치밀한 준비 없이는 삽입하기 어려운 자극이다.

트럼프는 북한이 망가지고 잘못된 존재임을 더욱 뚜렷이 하는 연설 기법으로서 한국의 놀라운 발전상을 수치를 동원해 그림으로 그렸다. 트럼프는 GDP.평균수명.민주화 등의 총체적 변화상을 언급하면서 동시에 63빌딩.롯데월드.한국 여자 골퍼 등 구체적 상징을 부각했다. 군사개념으로 표현하면 전략과 전술 모두에서 뛰어난 부추김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이 이런 역사에 드문 변신을 할 수 있었던 원인은 믿을 수 있는 우방 미국과의 동맹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가 트럼프의 로직이다.

미국의 전쟁 사학자들 사이에 퍼져있는 한국전쟁에 대한 관점이 있다. 'Bug-Out (전선이달)'론이다. 한국 전쟁 초기 한국군이 우왕좌왕하면서 대열이 무너지고 주어진 역할을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군이 놀라운 속도로 남진했고 미군의 희생이 늘어남은 물론 한국전쟁이 미국전쟁이 되고, 중국이 개입함으로써 결국 국제전으로 확대됐다는 시각이다. 이 결과 미국의 역사책에는 한국군의 역할이 제대로 서술되어 있지 않다.

트럼프는 서울에서 이 역사를 다시 썼다. "양국 간의 동맹은 전쟁의 참화 속에서 단련되고 역사의 시험을 통해 강해졌습니다. 인천상륙작전부터 폭찹힐 전투까지, 미국과 한국의 장병들은 함께 싸우고, 함께 희생했으며, 함께 승리했습니다." 한 문장에 '함께'가 세 번 나오는 경우는 쉽지 않다. 영작문에서는 감점 요소다. 성서에나 등장하는 강조법을 이용해 한미의 '함께' 수준이 이 정도이니 북한은 미국의 의지와 한미 동맹의 견고함을 시험하지 말고 핵을 포기 하라는 것이 이 연설의 결론이다. '함께, 함께, 함께'의 행간에는 한국 정부는 앞으로 한미 동맹에 대해 딴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경고도 배어있음은 물론이다. 잘 짜인 연설임에는 틀림이 없다.

트럼프는 한반도의 현 상황을 미국의 시각에서 극명하게 정리해 주고 떠났다. 흔한 말로 족집게 입시 과외 선생님처럼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컨설팅을 해주고 떠난 것이다. 이제 물어야 한다. 한국은 트럼프식 선악구도로 한반도의 앞날을 헤쳐 나갈 것인가? 거기에 따르는 위험과 비용 부담은 무엇이고 이를 감당할 능력은 있나?

트럼프의 연설이 광풍(狂風)인가 아니면 광풍(光風)인가를 가늠하기 위해 감정의 들뜸을 누그러뜨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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