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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속 이야기
안성남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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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7/11/14 미주판 15면    기사입력 2017/11/13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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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할 줄 아세요?" 영어 쓰는 동네에 살면서 많이 듣는 질문이다. 여러 민족이 섞여 사는 지역의 상가를 지나가면 보게 되는 안내문이 있다. 스페인어 하는 직원 있음. 중국어로 도와 줄 수 있음. 며칠 전 어느 도서관에 들렸을 때 작은 포스터 하나가 눈에 띄었다. 백인 소녀가 들고 있는 사진에 "한국말 할 줄 아세요?"라는 질문이 한글로 적혀 있었다. 조금은 생소하게 느껴지는 그 포스터를 보며 "한국말을 한다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지구라는 넓은 땅 덩어리 여기저기 흩어져 살면서 그 곳의 다른 환경의 영향으로 사는 방식이나 생각하는 것들이 달라졌다. 의사 소통을 위한 언어도 서로 다른 것이 되어 때로는 그것이 사람들 사이에 벽이 되기도 한다. 대신 여러가지 별다르고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만들어 졌다. 이쪽에서는 당연한 것이 저쪽에서는 신기한 이야기가 되고 산 넘어 동네에서는 즐거운 것이 강가의 동네에서는 금지된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어쩌다 서로 말을 섞으면서 조금씩 알아 듣게 되었어도 어떤 사물이나 말 속에 담아 놓은 또 다른 속내를 가진 각자의 의미는 여전히 등 푸르게 살아있다.

미국 생활 몇 년이 지났어도 살기에 분주해 여전히 한국말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아이들은 여기 학교에 다니면서 훨씬 빠르게 영어 문화에 적응한다. 그래서 텔레비젼에서 보여주는 말 장난 프로를 보며 우리들은 웃지 못하는데 아이들은 웃는다. 등장하는 단어들은 모두 알겠는데 그것이 왜 웃기는지는 모른다. 저 출연자가 이상한 억양으로 이상한 얼굴을 만들면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약간 슬퍼지는 것이 이제는 한국 텔레비젼에서 보여지는 어떤 대사나 흉내를 보면서 웃기는 이유를 모르는 것이 늘어간다는 것이다. 한국 것이든 미국 것이든 보이는 것 뒤에 숨은 진짜 모습이나 이야기에 대하여 점점 더 무식해져 간다는 자괴감으로 정신 차리자 하며 꼬집을 때가 많다. 그걸 모른다고 해서 삶의 가치가 얼마나 올라가고 혹은 내려가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책 제목 중에 '우아한 관찰자'라는 것이 있다. 사물의 관찰을 우아하게 한다는 표현이 재미있어서 기억에 남는다.

우선 눈에 보이는 겉모습이나 일차적 만남을 넘어 그것이 갖는 또 다른 의미나 숨어있는 뜻을 읽어내는 것에 관한 내용으로 짐작이 가는데 겉의 이야기가 아니고 속의 이야기를 찾아간다는 착상에 흥미가 간다. 음험한 목적을 가지고 캐내는 뒷조사가 아니고 놓쳐버린 재미로운 뒷얘기를 알아가는 우아한 행위로서 관찰자를 말하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보는 세상이 진짜가 아니고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있는 참 모습의 세상이 따로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우리 앞에 보여지는 것들의 뒤에 숨은 진짜 중요한 속삭임을 끄집어내는 것은 아주 흥미 있고 어쩌면 아주 중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노래를 듣거나 유적지를 방문하거나 어느 도시 어느 골목을 바라볼 때 그것이 품고 있는 뜻밖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한 소절 운율이, 기울어진 조각 돌 하나가, 허름한 어느 집 대문의 장식이 갑자기 특별한 의미로 눈 앞에서 살아난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의뢰인의 말을 듣지 않고도 그 사람을 밝혀내는 셜록 홈즈의 관찰력에 놀라다가 그 결과의 과정을 듣고 나서 '아하'하며 감탄하듯이, 영어를 배우면서 어떤 재미있는 표현 속의 숨은 이야기를 알고 나면 무엇인가 깊이 있는 영어에 한 발자국 더 들어선 기분을 느끼게 된다. 한국말을 하고 사는 우리들은 무심하게 쓰는 어떤 한국말을 그것이 만들어진 사연을 제대로 알고 쓰고 있는지 돌아보게도 된다. "한국"이라는 말이 어떻게 우리나라의 이름이 되었는지 속 이야기를 알고 나면 더 특별해지고 더 애정이 가게 될 것 같다.

속 이야기를 얼마나 알아야 겉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 이야기의 참 뜻을 열어볼 수 있는지 생각해 본다. 지나 보낸 일 년의 시간 속에 겉으로 드러난 많은 장면 뒤에 속살 같은 이야기는 얼마나 다채로웠는지 뒤돌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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