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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자취 곳곳에…'어서 오세요' 한글 문구도
사진으로 보는 종교개혁 500년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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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17/11/14 미주판 26면    기사입력 2017/11/13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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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지난 8월22~9월1일까지 독일, 체코, 프랑스 등을 돌며 마르틴 루터를 중심으로 한 종교개혁가들의 발자취를 쫓았다. 당시 현장에서 찍은 사진 등을 통해 종교개혁의 의미를 시각적으로 돌아본다.

장열 기자
사진 도움=김현배 목사(베를린비전교회)ㆍ김한수 목사(베를린순복음교회)


독일의 아이슬레벤은 마르틴 루터가 나고 죽은 곳이다. 광장 중간에 루터의 동상(사진1)이 우뚝 서 있다. 루터가 태어난 방(사진 2)과 죽음을 맞이했던 방(사진 3)은 500주년을 맞아 깔끔하게 리모델링을 한 상태다.

한인 방문객이 많은 탓에 루터 박물관 등에는 '어서 오세요'라는 한국어로 된 문구(사진 4)도 붙어있다.

루터는 평소 글을 많이 썼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쓴 자필 편지(사진 5·6) 등이 아직도 보존돼 있다. 사망 직후 친구와 가족들이 루터를 기리기 위해 얼굴에 석고를 발라 '데드 마스크(사진 7)'도 제작했었다.

루터는 아이슬레벤에서 눈을 감았지만 시신은 그가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던 비텐베르크로 옮겨진다. 그의 무덤(사진 8)이 비텐베르크 성교회(사진 9)에 있는 이유다. 루터는 이 교회 정문(사진 10)에 종교개혁의 불씨를 지핀 95개조 논제를 내걸었었다.

비텐베르크는 작은 도시다. 길 하나에 루터와 아내(카타리나 폰보라)가 함께 살았던 집(사진 11)을 비롯한 그의 절친했던 친구들(크라나흐·멜란히톤)의 집, 성교회, 시교회, 루터가 신학을 가르쳤던 비텐베르크대학(사진 12) 등이 모두 몰려있다.

루터는 주로 집에서 제자들과 어울리며 토론을 즐겼고 강의실(사진 13)도 만들어 신학도 가르쳤다. 집 바로 옆에는 한 그루의 큰 참나무(사진 14)가 있다. 교황이 루터에게 파문장을 보내자 그는 저 나무 밑에서 공개적으로 파문장을 불 태워버렸다.

비텐베르크는 종교개혁의 진원지라서 방문객이 많다. 루터 케이크, 루터 맥주, 루터 엽서(사진 15·16·17) 등 그를 상품화한 제품도 자주 보인다.

종교개혁 사상의 확산은 인쇄술의 발전과 맞물렸다. 루터의 95개조 논제가 인쇄기(사진 18)를 통해 온 유럽에 퍼질 수 있었던 이유다. 당시 금속활자를 발명한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동상(사진 19)도 있다.

루터는 말년에 반유대주의적 경향도 보였는데 훗날 독일의 나치가 루터의 사상을 오용하기도 했다. 유대인을 비하(유대인이 돼지의 젖을 먹는 모습)하는 부조(사진 20)도 전시 돼 있다.

어쨌든 루터는 개혁을 대변하는 인물로 꼽힌다. 쿠바의 전설적 혁명가 체게베라를 패러디한 루터의 포스터(사진 21)도 눈에 띈다.

박물관에는 재미있는 그림도 하나 있다. 루터가 컴퓨터와 무지개를 등지고 앉아 있는데 날개 달린 작은 악마가 그를 보며 웃고 있는 그림(사진 22)이다. 만약 루터가 만약 살아있었다면 현시대를 어떻게 바라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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