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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컷 만평에 1.5세 한인의 시선을 담는다

애니메이션 콘셉트 디자이너 서동연

2014년 7월 독립기념일,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보스턴의 불꽃놀이 축제는 아수라장이 됐다. 우왕좌왕하는 수백의 군중 속에 휠체어가 빠져 꼼짝 못하는 수척한 노인이 있다. 폭우를 피해 내달리는 사람들 틈에서 휠체어 노인을 피신시키던 서동연씨는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홀로 두시간이나 기차를 달려온 그의 사연을 듣게 된다.

근무력증으로 힘겨운 몸을 휠체어에 의지한 채 모험길을 감행한 노인의 순수함과 그의 귀가를 함께 도운 행인들의 선행에 가슴이 뜨거워진 서동연씨는 노인의 휠체어 여정을 상상하며 쏟아내듯 몇 장의 그림을 그렸다.

보스턴글로브와 보스턴닷컴, 디스커버리 채널의 주목을 받으며 화제와 반향을 일으킨 일러스트 연작 '더 올드 맨' 의 탄생이다. 한인 1.5세 애니메이션 콘셉트 아티스트 서동연 영문 이름 제리 서(Jerry Suh)를 작가로 한단계 도약시킨 출발점이기도 하다.

'올드맨' 일러스트는 약자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과 이야기꾼으로서의 상상력이 고스란히 드러난 작품으로 보스턴 글로브와 디스커버리 채널 등 주류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만화 포기했던 모범생 딸

기억조차 닿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수없이 만화를 그렸고 책읽기와 소설 쓰기가 한없이 즐겁던 어린 서동연은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만화가의 길을 포기한 한국의 모범생 딸이었다. 2007년 어머니 남동생과 보스턴으로 유학 올 때도 만화는 하지 않겠다, 근사한 미국 명문대생이 되어 어머니의 희생에 보답하겠다 결심했다. 그리고 보스턴 인근 벨몬트 하이스쿨 8학년으로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

"미술 교사이신 마크 밀로스키 선생님은 제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해주신 멘토십니다. AP클래스로 미술 과목을 선택한 저의 잠재 능력을 알아보고 저를 아티스트로서 또 한 개인으로서 열정적으로 지지하고 독려해주셨어요."

보스턴글로브 스콜라스틱에서 아메리칸 어워드 대상을 수상하고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 표창을 받고 우수 고교생 레지던트로 세미나를 열고 작품을 판매하고 보스턴 한인 신문에 만평을 올리고 유수의 아트 칼리지들로부터 장학생 러브콜을 받는 분주한 경사가 줄줄이 이어졌다.

그러나 2010년 그는 명문 코넬대 건축학과에 입학했다. 부모님의 헌신에 대한 보답이자 자신이 좋아하는 미술을 '접목'시킨 타협점이라고 생각했다.

'명문대' 버리고 열정 택했다

"입학 직후부터 스파르타식 프로젝트에 돌입해서 거의 매일 새벽 4시까지 하드 트레이닝을 받는동안 생각했죠. 여기 쏟아붓는 이 많은 시간을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쓸 수 있다면 훨씬 괜찮은 사람이 될 텐데."

치열한 고민과 갈등 끝에 코넬대를 나와 이듬해 '사바나 아트 디자인 칼리지'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정말 하고픈 일을 찾아나선 열정에 빛나는 재능이 더해진 덕분으로 재학 중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인턴십과 마이크로소프트 콘셉트 디벨로퍼의 기회를 얻었고 졸업 후에는 스펀지 밥으로 유명한 '니켈로디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백그라운드 아티스트로 일했다.

올해부터는 모션업계 디자이너들이 선망하는 커머셜 디자인 스튜디오 '벅 디자인'으로 옮겨 구글 증강현실 프로젝트의 콘셉트 디자인과 페이스북의 스타일 가이드, UI 디자인을 맡아하며 비주얼 아티스트로서의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1.5세의 시선 담긴 만평 그린다

그는 최근 미주 중앙일보 온라인에서 '서동연의 만평 1.5'를 통해 한인 독자들과의 소통을 시작했다.

만평은 시사적인 이슈를 단순한 그림으로 응축해 풍자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잘 그리고 싶기보다 잘 '표현하고' 싶고 의미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그가 각별히 열망하는 작업이다. 이미 고교 시절 보스턴의 한인 신문에 만평을 연재해 호평 받은 경험도 있다.

그의 일러스트 작업 중 하나인 '셀피(Selfie)'는 바닷가에 떠밀려온 시리아 난민 아기 알란 쿠르디를 모티브로 했다. 해변가로 떠밀려와 엎드린 쿠르디의 주검을 배경으로 튜브를 맨 건장한 남성이 셀피를 촬영하는 이 일러스트는 난민들의 고통을 볼거리로 관광만 하는 우리들, 여전히 이야기의 중심은 자신의 국익에만 두는 지극히 이기적인 21세기의 세계를 풍자하고 있다.

시리아 난민의 비극을 전세계에 알린 난민 아기 '알란 쿠르디' 를 모티브로 한 풍자 일러스트 '셀피'

'정치의 물결 속에서(In The Wave of Politics)'는 시리아 난민들이 목숨을 걸고 뛰어든 희망의 바다는 잔혹한 피바다일 뿐이고 소수 권력자들이 가볍게 쥐고 흔드는 포도주에 불과하다는 냉혹한 현실을 웅변한다. 1.5세 젊은 한인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과 따뜻한 연민이 담겨있다.

변화와 성장 이끌어내고픈 작가

"소외되고 억압받는 사람들, 인종주의나 불평등의 문제를 환기시킬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잠깐의 감흥에 젖었다가 일상으로 돌아와 표정을 바꾸는 작가가 아니라 이런 주제에 관심을 일으키는 작업을 꾸준히 하는 예술인이 되고 싶습니다."

10년 후 쯤에는 애니메이션 영화 부문에서 아시안 여성 리더로 활약하고 싶다는 큰 포부도 있다. 1.5세 이민자만의 정체성과 문화와 시각을 메인 스트림에 편입시켜 다양성을 높이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이집트 왕자'는 캐릭터들이 스토리 안에서 성장해나가요.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나 또한 성장한 듯한 마음의 변화를 느꼈거든요. 그런 작품을 만드는 것이 꿈이에요. 사람들이 제 그림을 의미있게 즐기고 변화시키는 도구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사진 / 김상진 기자


최주미 기자 choi.joomi@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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