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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사드 시대…중국에 할 말은 해야 한다

'소국은 대국 따르라'는 중국 관리
중국의 '대국주의' 떠올리게 해
중국 국가주석과 총리 모두에게
정상 예우하는 건 '이중 과세' 해당
중국과의 협상은 한판 선전전
사실 왜곡은 용감하게 들춰내야


'한겨울 얼음 석자가 하루아침에 언 게 아니다(氷?三尺非一日之寒)'란 말이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사드) 체계를 둘러싼 한.중 갈등도 완전 해소는 어려워 보인다.

한국에 13조원 이상의 피해를 주고도 중국은 사드 철수를 고집하고 있다. 다음달로 예정된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을 계기로 향후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와 관련해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 정부를 대하는 중국의 태도에 대국주의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우선 두 나라의 격 문제다. 이와 관련, 문 대통령이 지난 6월 당선 인사차 중국에 파견한 이해찬 특사를 중국이 왜 하대했는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 특사의 자리 배치를 아랫사람 만날 때와 같이 했다.



중국인의 일반적 손님 접대는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는 형태다. 4년 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김무성 특사를 중국에 보냈을 때 시진핑은 이런 구도로 김 특사를 맞았다.

한데 이번엔 시진핑이 상석에 앉고 이 특사는 테이블 모서리에 앉는 모양새였다. 시진핑이 홍콩특별행정장관을 접견할 때의 자리 배치와 같았다. 한국이 중국의 일개 행정구에 불과하냐는 오해를 살 수 있었다.

이 문제를 거론하는 건 한국을 대하는 중국의 태도에 대국주의가 작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사드 갈등이 한창일 때 우리 기업인이 전한 한 중국 외교부 관리의 말이 "소국은 대국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이런 인식이 중국 관리들에게 박혀 있다면 어떻게 양국 관계의 건설적 발전이 가능하겠나. 중국은 오랜 세월 세상 모든 국가를 자신의 발 아래 두는 천하 질서의 틀에서 살았다. 시진핑이 강조하는 '중국 특색의 대국 외교'가 천하질서의 부활일까 걱정스럽다.

국가의 격과 관련해 우리 대통령과 중국 총리의 만남에 대해서도 새로운 성격 규정이 필요하다.

수교 이후 우리는 두 명의 중국 지도자에게 정상 예우를 해 왔다. 중국의 국가주석을 겸하고 있는 공산당 총서기와 총리에 대해서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중국은 덩샤오핑 집권 이후인 1970년대 후반부터 이제까지 7명 내외의 정치국 상무위원이 국정을 꾸리는 집단지도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총서기가 1인자이긴 해도 나머지 정치국 상무위원들과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여겨진다.

덩이 설계한 집단지도체제 안에선 정치국 상무위원 개개인이 자신의 업무 분야별로 독립적 권한을 행사하고 상무위원회 운영도 1인 1표 방식에 따라 총서기는 N분의 1의 영향력만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중국 총리는 경제에 관해 전권을 휘둘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8년 중국을 방문했을 때 장쩌민 국가주석이 김 대통령에게 "경제는 주룽지 총리와 논의하시라"고 말했을 정도다.

장쩌민 치세는 그래서 장(江)-주(朱) 체제로 불렸고 후진타오 시기 또한 원자바오 총리와 함께 중국을 다스린다 해서 후(胡)-원(溫) 체제라 일컬어졌다. 그러나 시진핑 시기는 더 이상 시진핑과 리커창의 시(習)-리(李) 체제라 불리지 않는다. 시진핑의 독주 탓이다.

시진핑이 리커창 총리로부터 경제 권력까지 앗아가며 2인자 리커창의 존재감은 대폭 축소됐다. 특히 지난달 말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이 '당 중앙 집중 영도 강화에 관한 약간의 규정'을 통과시키면서 두 사람의 상하관계가 더욱 분명해졌다. 이 규정에 따르면 리커창은 매년 시진핑에게 업무 보고를 해야 한다.

따라서 지난 13일 문 대통령과 리커창 총리의 만남을 '정상회담'이 아닌 '회담'으로 표현한 것은 적절했다. 아울러 중국에선 총리가 참석하는 '한.중.일 3국 정상회의'도 그 명칭이 타당한 것인지 검토가 필요하다. 중국 총리를 계속 정상 예우하는 건 '이중과세'에 해당한다.

국가의 자존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 우리가 챙기지 않는데 누가 신경 쓰나. 우리의 안이한 인식부터 고칠 필요가 있다. 이해찬 특사에 대한 중국의 홀대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넘어간 우리 외교의 무신경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우리 측 관계자는 "중국이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는 말로 어물쩍 넘어갔다.

지난 11일 문재인-시진핑 정상회담 후 청와대의 문 대통령 방중 발표 소식도 괴이하기 짝이 없다. 우리는 회담의 가장 큰 성과로 문 대통령의 연내 방중 소식을 강조했다. 그런데 중국 발표엔 이와 관련된 아무런 문구가 없었다.

'한국 외교부 장관의 이달 내 중국 방문을 환영한다'는 게 전부였다. 정상적 경우라면 '시진핑 주석이 문 대통령에게 편리한 시기에 중국을 방문해 달라'는 초청의 뜻을 전하고 이에 우리 대통령이 수락하는 형태가 돼야 옳다.

시 주석이 초청의 뜻도 밝히지 않았는데 우리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키로 했다는 게 얼마나 우스운 모양새인가. 그저 '성과'만 강조하려다 보니 국가의 격은 간 곳이 없어지고 그러다 보니 중국으로부터 가벼운 상대로 치부되는 게 아닌가.

중국의 노회한 외교에 잇따라 얻어맞는 모양새의 아마추어 외교력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도 큰 문제다. 지난 9월 한.중 외교장관 회담 후 중국 외교부는 홈페이지에 "강경화 장관이 '한국 측은 한반도에 다시 전술핵무기를 배치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충실히 지킬 것"이라고 올렸다.

강 장관이 이후 중국에 약속한 바 없다고 주장했지만 이미 사달이 난 뒤였다. 사드 갈등을 봉인한 10월 31일 합의 중의 '3불(三不)'도 비슷한 경우다. 중국은 우리 측이 사드 추가 배치, 미사일방어(MD) 체제 편입, 한.미.일 군사동맹 등 세 가지 사항에 대해 불가(不可)를 '약속'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중국이 마오쩌둥의 네 가지 협상 전술 중 하나인 '선참후주(先斬後奏, 선 처리 후 보고)' 방식을 응용한 것이다. 상대의 의도를 중국 자신에 유리하게 해석한 뒤 이를 언론에 흘려 기정사실화하는 전술이다.

10.31 합의나 문.시 정상회담 등에서 우리가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건 우리도 할 말은 했어야 한다는 점이다.

어떻게 중국의 졸렬한 사드 보복에 대해 일언반구의 말도 끄집어내지 못하나. 중국의 눈치를 살펴서인가. '외교나 안보 사안이 경제에 영향을 주는 데 양국이 유의하자'는 정도의 말이나 표현은 가능한 게 아닌가.

"중국과의 협상은 한판의 선전전이다. 중국이 사실을 왜곡하고 힘으로 착취하는 비열한 행위를 용감하게 들춰내야 한다"고 말하는 대만의 중국 협상 전문가 린원청의 말을 새길 필요가 있겠다. 우리도 이제 중국에 할 말은 해야 한다.

유상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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