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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유토피아의 힘

오 민 석 / 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영문학

유토피아의 그리스어 어원은 '없는(ou-)' '장소(toppos)', 즉 '없는 곳(no-place)'이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나 누구나 소망하는 상상의 공동체가 유토피아다. 인류는 유사 이래 늘 이 세상에 '없는 곳'을 꿈꾸어 왔고, 그 '없는 곳'은 항상 이곳보다 더 '좋은(eu-)' '장소(toppos)', 즉 더 '좋은 곳'이었다.

반(反)유토피아론자들은 '없는 곳'을 꿈꾼다는 점에서 유토피아 욕망을 헛되고 쓸모없는 망상으로 취급을 해 왔다. 그러나 유토피아 욕망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다.

유토피아의 어머니는 '나쁜' 현실, '결핍'의 현실이다. 나쁜 현실 없이 좋은 현실에 대한 욕망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유토피아의 뿌리는 현실이다. 유토피아는 현실에 대한 '부정적' '비판적' 시각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모든 현재는 과거의 유토피아였다. 가령 노예제 사회에서 볼 때 근대 시민사회는 실현 불가능한 유토피아였다. 그러나 그것은 오랜 시간을 통해 성취되었다. 이런 점에서 유토피아는 앞으로 도래할 그 무엇이다. 그것은 다가오는 현재다. 그러나 현실이 된 유토피아는 다시 결핍을 드러낸다.



이런 점에서 인류의 역사는 유토피아가 실현되어 온 역사이고, 사라진 역사다. 유토피아는 항상 현실이 되고 현실 속에서 사라지며, 사라짐과 동시에 또 다른 유토피아를 만들어 낸다. 이렇게 유토피아는 '없는 곳'이었다가 '있는 곳'이 되며, '있는 곳'이 되는 순간 다시 '없는 곳'으로 전화(轉化)된다. 유토피아는 비현실→현실→비현실의 끝없는 연쇄 안에 존재한다.

미국의 농업생물학자였던 윌리엄 클라크는 "청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는 말을 남긴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클라크가 말했던 '야망'은 세속적 성공과는 다른 것이었다. 이 말이 들어간 문장 전체를 보면 그가 말하고자 했던 '야망'이 무엇인지 금방 드러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청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돈이나 이기적인 출세, 사람들이 명성이라 부르는 덧없는 것을 위한 야망이 아니라, 인간이 당연히 되어야만 하는 모든 것의 성취를 위한 야망을 가져라."

전자는 매혹적이지만 성취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를 끝없이 목마르게 한다. 그것은 오로지 경쟁에서의 승리와 우월성을 통해 성취된다. 그것은 배타적이며 독점적이다.

이에 반해 후자는 경쟁의 환경에서 벗어나 있다. 그것은 승리와 비교우위를 지향하지 않는다. 오직 '사람 됨'만이 후자의 목표다. 그것은 타자를 억압하지도 지배하지도 않으며, 오로지 인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것만을 목표로 삼는다. 후자는 겉으로 보기에 덜 매혹적이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경쟁 대신에 환대와 사랑이 있다. 그곳에서는 승리가 '능사'가 아니라 더불어 사는 것이 능사다. 이런 점에서 후자는 '건강한' 유토피아 욕망이다.

사람들이 이런 야망을 가질 때 그들은 실패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환대와 사랑의 공동체를 꿈꾸게 될 것이다. 없어도 되는 것을 더 이상 갈망하지 않을 것이며, 패배의 두려움을 가지고 무한경쟁의 전쟁터에 자신을 상품으로 내놓지도 않을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들의 세계에서 '진짜 자아'의 실현을 꿈꿀 것이다. 그들의 가슴은 공포가 아닌 기대로 가득 찰 것이며, 자연스럽게 다른 진짜 자아들과 조금씩 연대해 나갈 것이다.

개체의 완성은 오로지 환대에 기초한 '관계' 속에서 이뤄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정한 유토피아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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