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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원동(遠東) 합창단'

10월에 방문한 우슈토베에는 스산한 바람만 불고 있었다. 80년 전인 1937년 가을, 연해주에 모여 살던 고려인들은 이유도 모른 채 화물열차에 실려 어디론가 보내졌다.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삶의 터전을 내주어야 했던 그들은 기차의 기적 소리와 함께 고향을 떠나야 했다. 화물열차에 짐짝처럼 실린 그들이 중앙아시아의 허허벌판을 달려 도착한 첫 번째 역이 카자흐스탄의 우슈토베역이었다. 황량한 벌판에 들짐승처럼 버려진 고려인들은 살길을 찾아야 했다. 곧 다가올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바람이라도 막아줄 언덕이라도 있어야 했다. 나지막한 언덕을 발견한 이들은 토굴을 파고 들어가 그해 겨울을 났다.

낯선 땅에서 긴 겨울을 난 고려인들은 이듬해 봄이 되자 씨앗을 뿌렸다. 부지런한 고려인들의 손이 닿는 곳마다 황무지가 옥토로 변했다. 농사로 기반을 닦은 고려인들은 자식 농사도 부지런히 지었다. 당시 고려인들은 '신과 옷은 없어도 학교는 다들 보냈다.'고 기억한다. 고향을 빼앗긴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교육밖에 없다는 것을 삶으로 체득했기 때문이다. 고향을 그리워하며 모여 살던 마을은 '달리니바스톡'이라고 불렸다. '달리니바스톡'은 러시아어로 '원동(遠東)' 즉 머나먼 동쪽이라는 뜻이다.

고려인 강제 이주 80주년 기념행사를 위해 '달리니바스톡'을 찾았다. 알마티 공항에 내려 자동차로 네다섯 시간을 달려야 나오는 시골이다. 이곳에는 고려인 2,3세들이 한국의 언어와 음식 등 전통문화를 지키며 살고 있었다. 고려인들이 세운 '달리니바스톡' 학교 강당에 고려인 후손들이 가득 모였다. 우리가 준비해 간 순서 사이에 고려인들이 등장했다. '우슈토베 우리 노인회'의 합창과 무용이 있었다. 한국 고전 무용, 러시아 민속춤, 그리고 카자흐스탄 전통춤까지 소화하는 것을 보면서 다양한 문화 속에 살아야 했던 고려인들의 애환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 차례는 '원동 합창단'이라고 순서지에 나와 있었다. 합창단이니 수십 명이 나오리라는 기대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겨우 3명이 나오더니 그것도 어설프게 줄을 맞추고 섰다. 그럴 거면 중창단이라고 하든지 트리오라고 해야지 웬 합창단?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고향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에는 수십 명 합창단이 쏟아놓는 것보다 더한 눈물 자국이 서려 있었다. 그들이 부르는 '고향의 봄'에는 고국 방문의 꿈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은 부모 세대의 설움이 담겨 있었다.



'원동 합창단'이 서울에서 공연을 했다. 한 문화재단의 초청으로 고국 방문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번에는 '합창단'이라는 이름 대신 겸손하게 '원동 중창단'이라는 이름으로 갔다. 단원도 한 명이 늘어 4명이었다. 알로냐 김, 뵈니아 조, 예카데리나 센코프, 그리고 스베틀라나 허가 단원들의 이름이다. 사진으로 만난 이들의 얼굴이 낯설지 않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달리니바스톡에서 봤을 때보다 옷도 곱게 차려입었고 한껏 멋을 냈다는 것뿐이다.

그래도, 그들의 눈에 서린 고향을 향한 그리움은 여전하다. 그들이 부른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우리도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난 자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랜만에 목놓아 불러보자. 떠나온 고향을 마음껏 그리워하자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창민 / LA연합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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