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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하와이 요양원서 쓸쓸히 떠난 94세 조선 마지막 세자빈
뉴욕 설계사무소서 일하던 줄리아
영친왕 아들 이구와 58년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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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스]    기사입력 2017/12/05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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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는 이혼 후에도 원래 성인 '줄리아 멀록'으로 돌아가지 않고 평생을 '줄리아 리'로 살았다. [중앙포토]
줄리아는 이혼 후에도 원래 성인 '줄리아 멀록'으로 돌아가지 않고 평생을 '줄리아 리'로 살았다. [중앙포토]
조선왕가 마지막 세자빈의 죽음은 처연했다. 타계 소식조차 열흘이 흐른 5일 뒤늦게 알려졌다. 대한제국 최후의 황태자 이은의 외아들인 고(故) 이구(李玖)의 부인 줄리아 리(본명 줄리아 멀록)가 지난달 26일 미국 하와이의 할레나니 요양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94세.

63년 한국 와 낙선재 안주인 생활
종친들 종용으로 이혼 뒤 미국행
마지막 남긴 말 "이건 기적이야"


줄리아 리의 부음을 챙긴 이남주(78) 전 성심여대 음악과 교수는 “손전화도 못 쓸 정도로 거동이 불편해 누워만 있다가 쓸쓸하게 눈을 감았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이구 선생이 삼종숙부인(9촌) 조카다.

줄리아 리는 독일계 미국인으로 1950년대 후반 미국 뉴욕에서 이구 선생을 만났다.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인 이오 밍 페이(I.M.Pei)의 설계사무소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담당했던 줄리아는 직장 동료 중에서 독특한 동양 청년을 발견했다.

MIT공대를 나온 건축가인 이구는 섬세하고 진중한 성격으로 줄리아를 매료시켰고, 27세 이구와 35세 줄리아는 58년 결혼했다. 이남주 교수는 “외롭게 타국을 떠돌던 이구 선생에게 8년 연상인 줄리아가 엄마나 누나같이 의지가 됐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구 부부는 63년 일본에 머물던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의 요청으로 함께 귀국해 서울 창덕궁 낙선재에 짐을 풀었다. 재주 많고 정이 많은 성품의 줄리아였지만 낯선 궁궐 생활과 종친들의 외면을 견디기는 힘들었다. 푸른 눈의 이방인 세자빈을 인정할 수 없었던 종친회는 후사를 잇지 못한다는 이유를 들어 이구 선생에게 이혼을 종용했다. 낙선재가 싫다며 호텔 생활을 하던 남편과 별거상태였던 줄리아는 결국 82년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는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세손인 이구와 줄리아 리 내외. 1970년대 이들이 기거했던 서울 창덕궁 낙선재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82년 이혼 후에도 한국에 머물렀던 줄리아는 95년 하와이로 떠났다. [중앙포토]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세손인 이구와 줄리아 리 내외. 1970년대 이들이 기거했던 서울 창덕궁 낙선재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82년 이혼 후에도 한국에 머물렀던 줄리아는 95년 하와이로 떠났다. [중앙포토]
이남주 교수는 “시어머니 이방자 여사와 불화했지만 낙선재에 바느질 방을 만들고 이 여사가 운영하던 사회복지법인 ‘명휘원’의 장애인을 고용해 기술훈련을 시키는 등 조선왕가의 마지막 여성으로서 도리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그에게 일을 배운 장애인들은 줄리아를 ‘큰 엄마’라 부르며 따랐는데 이혼 뒤에도 ‘줄리아 숍’이란 의상실을 경영하며 복지사업을 계속하게 된 인연이 됐다.

아무 도움 없이 홀로 일하던 줄리아는 결국 95년 하와이에 새 정착지를 마련해 한국을 떠났다. 자식이 없었던 줄리아기 낙선재 시절 입양한 이은숙(미국명 지나 리)씨가 곁을 지켰다. 재혼하지 않고 일본으로 건너간 뒤 소식이 없는 전 남편 이구를 그리워했다는 게 이 교수의 전언이다.

2000년 9월 일시 귀국한 줄리아는 한 달 여 머물면서 추억의 장소를 둘러봤다. 시아버지 영친왕의 묘소를 참배하고 한때 안주인으로 살림을 살았던 낙선재에 들러 장애인 제자들을 만났다. 이구 선생에게 직접 전해주고 싶었을 조선왕가의 유물과 한국 근대사 관련 사진 450여 점을 덕수궁박물관에 기증했는데 이때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줄리아의 마지막 편지’라는 제목으로 방송되기도 했다.

그토록 만나기를 원했던 전 남편과의 재회는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2005년 7월 16일 일본 도쿄의 옛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이구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이구 선생의 유해는 20일 국내로 들어와 장례를 치렀지만 줄리아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었다. 낙선재와 종묘를 거쳐 장지로 떠나는 장례행렬을 먼발치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낙선재에 머물던 시절 이구 부부의 모습이다. 한복차림으로 포즈를 취했다. [중앙포토]
낙선재에 머물던 시절 이구 부부의 모습이다. 한복차림으로 포즈를 취했다. [중앙포토]
지난해 10월 하와이 요양병원으로 찾아가 줄리아와 이별 인사를 나눴던 이 교수는 “나를 보고 처음에는 멍하니 있다가 ‘이건 기적이야’라고 중얼거리며 한없이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한 남자를 사랑했기에 비운의 황족이 외면받는 먼 이국땅이라도 운명처럼 따라나섰던 줄리아의 삶이 끝났다. 100여 년 전 사라진 대한제국의 희미한 그림자가 언뜻 비친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이구(1931~2005)=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세손. 대한제국 황실 제3대 수장인 영친왕 이은과 일본인 부인 이방자의 아들이다. 미국 MIT 공대에 유학한 건축가이자 교육자로 서울대와 연세대에서 건축설계를 강의했고 건축설계회사 ‘트랜스 아시아’를 운영했다.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총재, 종묘제례 봉행위원회 총재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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