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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유행을 탓하기 전에

외국에는 옷차림에 유행이란 게 없고 다들 자유롭게 자기 개성에 맞춰 입는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그런데 '외국'에서 살고 있는 입장에서 말하자면 유행하는 옷차림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다. 아무래도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더하다. 예를 들면 지난해 런던에서는 무릎 부분만 가로로 찢은 딱 붙는 검은색 바지가 유행이었다.

유행이 있기는 하지만 또 모두들 다 입는 선풍적인 옷차림은 없다. 좀 자주 보이는 정도다. 게다가 보기에 다들 같은 옷을 입었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데, 이는 사람들이 워낙 각양각색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덩치가 아주 큰 사람, 키가 아주 큰 사람, 아주 작거나 마른 사람들이 다양하게 섞여 있고 거기에 더해 피부색이나 머리카락 색깔, 더 나아가 헤어스타일도 각양각색이니 비슷한 옷이 아니라 때로는 같은 옷을 입어도 도무지 비슷하게 보이지 않는 지경인 것이다. 또 문화적·종교적 배경에 따라 다른 옷차림을 하고 있다는 점 역시 무시할 수 없다.

몇 년 전 겨울,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면서 자리에 나란히 앉은 승객들을 무심코 쳐다보다가 약간 놀랐다. 모두 다 검거나 어두운 계통의 외투를 입고, 머리카락 색은 따지고 보면 거의 다 검은색이라고 할 수 있는 데다 남자들은 대개 짧게 머리를 깎고 여자들은 나이가 좀 있으면 웨이브 진 머리를, 젊으면 생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앉아 있는 거다. 체격도 뭐 그렇게 차이 없이 고만고만하다. 순간적으로 누가 누군지 구별이 안 갈 정도로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가까이 들여다보면 각자 다른 모습을 하고 있겠지만 그 다양성의 폭이 그다지 크지 않다. 한국은 외모나 인종뿐 아니라 문화도 상당히 균질한 사회라는 인상을 준다. 영국에 비한다면 매우 그렇다.

이러니 한국에서 무언가 유행하면 다들 그 옷차림을 하려는 것은 어쩌면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면에서 이미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선 설령 다른 복장을 하고 있다고 해서 그 이유로 눈에 더 띄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들 비슷비슷한 와중에 혼자만 상이한 차림을 하고 있다면 두드러지는 정도가 훨씬 클 것이다.



그런데 적어도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이라도 다르게 해서 비슷하게 보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안 그래도 가뜩이나 비슷한데 모두들 비슷한 옷을 입는다고 한다면 나는 입기 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보다는 많아야 하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다. 왜 좀 더 비슷하게 보이는 것을 선택하는가. 왜 달라 보이는 것을 피하는가.

내 아이가 어릴 때 다닌 영국의 유치원에는 다른 동양인은 한 명도 없었지만, 백인 아이들이라고 해서 머리카락 색깔이나 눈동자 빛깔이 똑같은 아이는 하나도 없었다. 다들 다르게 생겼다. 인종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고, 문화적 배경도 저마다 다른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매우 강조해 가르치는 것은 아이들 각각이 다르고, 다르기 때문에 독특하고, 그래서 소중한 존재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아이들에게 각자의 다른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하고, 그 다른 점을 더 발현시킬 수 있도록 북돋워준다.

한국의 청소년들 사이에서 긴 패딩코트가 단연 유행인 모양이다. 입지 않으면 무리에 끼이기가 어색할 지경이라는데, 그것도 검은색을 입어야 한다고 한다. 어떤 어른들은 이런 획일성을 개탄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유행을 따른다고 한심해하기 이전에 사람은 저마다 다르다고, 각자의 특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살리라고, 튀어도 된다고 가르치고 지지해 줬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김세정 / 런던 GRM Law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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